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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괴물이 온다 '재정위기'] <5·끝> 한국은 이상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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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괴물이 온다 '재정위기'] <5·끝> 한국은 이상없나

입력
2010.02.1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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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나랏빚 400조… 量보다 불어나는 속도가 문제

적어도 재정에 관한 한, 한국은 '우등생'이었다.

환란 이후 처음 재정이 적자로 돌아선 뒤, 마이너스 행진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감내할만한 정도였다. 국가채무 비율 역시 선진국의 절반 이하였다.

현 정부가 대규모 감세에 나서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슈퍼 추경'등 과감한 재정지출 확대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비쌌다. 재정 적자는 위험 수위를 넘어섰고, 국가채무는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장'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나 미국 일본 영국 등에 비할 수준은 아니지만, 우등생 지위가 삐걱대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재정은 일단 붕괴되면 그 충격의 깊이와 강도가 메가톤급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다시 되돌리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과연 우리나라는 안전한지 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일단 통계 수치로만 보면, "아직 괜찮다"는 정부 주장이 틀리지 않다. 올해 예상되는 국가채무는 407조2,000억원, 국내총생산(GDP)의 36.1% 규모다.

일본(227%) 그리스(125%) 이탈리아(120%)는 물론 미국(94%) 영국(82%) 등과 비교해도 여전히 양호한 편이다. 작년 재정적자도 51조원으로 GDP의 5%에 달했지만, 이 역시 선진국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가파른 증가 속도다. 국가채무는 203조원(2004년) →309조원(2008년) →366조원(2009년) →407조원(2010년) 등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추세.

특히 작년과 올해 2년간 불어나는 채무만도 100조원에 육박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02년(18.5%)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머지 않아 진짜 재앙이 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정부 예상대로 2013년께 균형 재정이 이뤄진다고 해도 재정 지출이 늘면서 2050년 적자가 GDP의 10%에 이르고 국가채무는 GDP의 91%에 달할 것"이라는 끔찍한 전망을 내놨다.

유럽발 재정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의 현 재정상태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특히나 정부 예상과 달리 지금의 적자 구조가 만성화하면 재정 위기 시점이 2040년으로 10년 가량 앞당겨질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다. 재정측면에서 고령화는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들고, 세금 쓸 사람은 많아진다는 뜻. '재정위기가 빨리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재정문제를 훨씬 더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일본 등 경제대국들이야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영역에 속하고,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은 결국 다른 유럽국가들이 도와줄 수 밖에 없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비빌 언덕'도 없다.

더구나 금액조차 추산키 어려운 통일비용까지 고려한다면, 현재의 재정통계수치에 안주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재정통계 자체를 좀 더 보수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식 국가채무로 잡히는 중앙ㆍ지방정부 채무 외에 공기업ㆍ공적금융기관ㆍ정부보증 채무 등도 광의의 국가채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공기업 채무나 보증 채무 등은 문제가 생기면 최종적으로 국가와 국민들이 떠안아야 하는 몫"이라고 말했다.

박종규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은 "금융 부문의 취약성, 높은 대외 의존도, 그리고 급속한 고령화 등을 감안할 때 우리는 선진국보다 더 튼튼한 안전판,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 세대에 시한폭탄을 안겨줘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남유럽發 재정위기와 국내 경제

지난 주말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자 전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우리 금융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증시는 급락하고 환율은 급등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유럽 발(發) 재정위기가 국내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며칠 동안 혼란을 겪었던 금융시장도 재정위기가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하듯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재정문제가 불거진 5일부터 10일까지 코스피지수는 4일 1,616.42에서 10일 1,570.49(10일 종가)로 45.93포인트 떨어졌지만 11일 1,597.81까지 반등했다.

원ㆍ달러 환율은 4일 1,150.9원에서 8일 1,171.9원까지 21원이나 치솟았지만 9일부터 하락하기 시작, 11일에는 1,156.8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최근 유럽 일부 국가에서 국가 채무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우리 경기 상황에 아주 나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그리스 문제 같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은 앞으로도 불쑥불쑥 튀어나올 수 있지만, 우리나라가 올해 비교적 완만한 성장을 한다는 기존 전망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도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우리 금융기관이 보유한 이들 국가 채권 비중은 그리스가 전체의 0.72%, 스페인 0.11%, 이탈리아 0.3%, 포르투갈 0.04% 가량으로 매우 낮다는 것.

다만 이번 위기가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부추겨 우리나라 증시나 외환시장으로부터 외국계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연초 이후 달러화는 유로화 대비 5.8% 강세, 엔화는 달러화 대비 3.3% 강세가 나타나면서, 외환시장에선 이미 위험회피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머징마켓에서 글로벌 펀드 자금이 2월 첫째 주까지 2주 연속 유출됐는데, 이는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이다. 이상재 현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재정위기까지 더해져 신흥시장에서 투자자금의 유출이 좀 더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 이영 한양대 교수 인터뷰 "경기침체땐 적자재정 운용, 경제 좋아지면 흑자 내야"

재정학 전문가인 이 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대외 여건이 취약하기 때문에 재정 건전성 확보가 더욱 중요하다"면서 "경제가 호전되면 정부가 흑자재정을 달성해서 재정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유럽에서 시작된 재정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전개 양상을 어떻게 예상하나.

"재정 위기는 절대 단시간에 회복할 수 없다. EU가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겠지만 쉽게 해결될 상황이 아니며 파장은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과거 남미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는데, 정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한 탓에 반복해서 구제금융을 받았다. 민간 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부실을 털고 갈 수도 있지만, 국가 부채는 이것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 재정상태를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가 35~36% 수준인데, 더 이상은 높아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외 여건이 더 불안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지출이 상당히 많고, 고령화 속도가 유달리 빨라 세입이 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재정위기가 발생하면 국가 신뢰도에 영향을 주고, 신뢰도 문제는 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주는 식으로 연쇄 반응이 발생한다."

-정부가 2013~2014년 균형재정. 목표를 달성하려면.

"세수를 추가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세 정책을 급하게 추진해선 안 된다. 또 정부로서는 경기대책이나 산업정책에서 조세 감면 카드를 자주 쓰게 되는데, 쉽지 않겠지만 비과세나 세금 감면 혜택은 가능한 줄여야 한다. 정치적 부담이 있지만 농업 및 교육 관련 예산의 효율성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최근 공기업 부채에 대한 경고음이 높다.

"분명히 불안한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공기업이 정부가 할 일을 대신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기업 부채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 공기업 부채를 국가부채에 포함하는 데는 통계상 어려움이 있으므로, 공기업 부채를 따로 엄격하게 관리하는 게 맞다.

- 국가 재정과 부채 관리를 강화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나.

"대외 여건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재정 건전성은 다른 OECD 국가에서보다 훨씬 중요하다. 재정수지 관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는 흑자가 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돈을 쓰려고 하지 흑자는 안 내려고 하는데, 정부가 재정을 통해 경기를 안정시키려면 침체 때는 적자 재정을 운용하고 경제가 잘 될 때는 흑자를 내야 한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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