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진짜 들어간 거야?”(전반 5분 선제골 허용) “아니, 저건 뭐 하는 짓이야!”(전반 27분 수비 실책) “꿈이야, 생시야. 어이가 없네.”(후반 15분 쐐기 골)
10일 밤 서울 명동의 고깃집이 술렁거렸다. TV 속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저마다 한마디씩 보탰다. 설마 하던 분위기가 걱정을 넘어 차츰 분노로 달아올랐다. 경기 종료 호루라기가 울리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성토의 장으로 돌변했다.
눈앞에 펼쳐진 사실은 간단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2010동아시아연맹선수권(일본 도쿄) 중국전 0 대 3 완패. 그러나 시민들은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단순한 패배는 아니었다. 32년 만의 치욕, 27경기 연속 무패 행진의 종말이란 수사가 따라붙을 만큼 의미가 컸다. 중국 축구는 그간 한국의 상대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공한증(恐韓症ㆍ한국 축구에 대한 중국의 두려움)이란 말이 있을까. 하지만 이 역시 이제 옛말이 됐다.
시민들은 “자만이 부른 자멸”이라고 분노했다. 회사원 한모(34)씨는 “승패를 떠나 기존에 한국 축구의 힘이었던 열정이나 패기 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형편없는 경기였다”고 격분했다. 축구 동아리를 운영하는 대학생 최모(23)씨는 “5분 만에 첫 골을 먹고도 나태하게 경기를 운영한 감독과 선수들이 축구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후유증은 11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대한축구협회(kfa.or.kr) 팬 게시판은 중국전 결과에 대한 팬들의 비난이 폭주해 서버가 한때 마비됐다. 서버다운 사태는 2006독일월드컵(스위스전) 이후 처음이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하루 평균 2,000~3,000여명이 동시 접속하는데 10일 경기 직후부터 평소보다 4배 정도 늘어나 사실상 홈페이지 운영이 정지됐다”고 설명했다. 항의 전화도 수천 통이나 빗발쳤다.
인터넷은 아예 비난의 물결이었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 자유토론게시판에는 ‘허정무 감독 사퇴 요구’ ‘외국 감독 영입 추진’ ‘자만함이 불러온 명백한 참패’ 등의 항의성 댓글이 수천 개나 달렸다. ‘축구장에 물을 채우라’는 원색적 비난도 많았다. 반면 ‘예상치 못한 첫 골을 먹은 탓인지, 중국을 너무 얕본 탓인지 허둥대는 대표팀이 안타까웠다’는 동정과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 후 나태해진 마음을 다잡고 월드컵에 매진하라’는 조언도 있었다.
선수들도 패닉(공황) 상태에 빠진 듯 했다. 대표팀은 이날 오전 예정된 단체 훈련을 취소하고 개개인의 자율 훈련을 실시했다. 잇따른 전지 훈련으로 선수 개개인이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는 게 공식이유지만 일각에선 중국전의 수모를 털어 내기 위한 조치란 분석이 나온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단체 훈련 취소는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중국전 패배가 자율 훈련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차분했다. 축구팬들의 쓰디쓴 고언들이 도리어 대표팀에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윤 MBC ESPN 해설위원은 “새로운 선수들의 경기 경험 부족, 조직력 약화 등이 패배 요인”이라며 “중국전 결과가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지만 이를 계기로 월드컵을 앞둔 선수들이 심기일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효웅 축구 전문 해설위원도 “방심하고 자만하면 안 된다는 패배의 교훈을 보약 삼아 남은 경기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표팀은 14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일본을 제물로 자존심 회복에 나선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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