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일 뉴스의 초점은 '현재권력과 유력한 미래권력 간의 세종시 싸움'에 모아지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강도론' 발언 등을 정면으로 맞받아쳤기 때문이다.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친다"는 이 대통령의 말을 겨냥해 박 전 대표가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떡하느냐"고 날을 세웠으니 그럴 만도 하다.
국민들의 시선도 두 지도자의 입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야당 지도자들의 세종시 발언은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10일"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세종시 수정안 백지화를 요구했으나 박 전 대표 발언에 묻혀버렸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이 대통령을 비판했으나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여당의 '한 지붕 두 가족' 싸움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야당은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특히 세종시 수정 추진이 빅이슈로 떠오른 뒤에 야당은 조연으로 전락했다. 4대강 예산 저지 투쟁을 할 때에는 반짝 관심을 끌었으나 대부분 이슈에서 보조적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야당의 역할 축소는 단지 '세종시 이슈 블랙홀' 현상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구조적 요인들이 있다. 첫째 야당 지도자들이 스타플레이어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여당 내부에서 고착화되고 있는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계파 대립 구도가 정가에 미치는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주요 정책이 논란이 될 때마다 친이계와 친박계 의원들은 계파 입장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2005년 세종시 원안 추진을 위한 법이 통과될 때 반대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도 지금은 수정안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지난 대선 당시 세종시 원안 추진을 약속했던 일부 친이계 의원들은 요즘 수정안 추진에 앞장서고 있다. 계파를 위해 자신의 소신을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과거 3김시대보다도 계파 의식이 더 뚜렷한 의원들도 적잖이 볼 수 있다. '주이야박'(낮에는 친이계, 밤에는 친박계 활동을 하는 의원) 등의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두 계파에 소속된 의원 분포는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물론 여당 내에서 계파를 유지∙관리하는 수단은 바뀌었다. 3김시대에는 돈(정치자금)과 공천, 권력(공직과 당직 등) 등을 매개로 계보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돈 나눠주기' 는 거의 사라진 대신에 공천이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됐다. '상대 계파가 잘 되면 다음에 내가 공천을 받는데 불리하다'는 두려움이 계파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과거와 구별해 요즘의 행태를 '신계파 정치'라고 부른다. 신계파 정치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여권 내부 세력이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하지만 그림자 부분이 너무 크다.
여당 내의 계파 정치가 여야의 대결 구도를 덮어버린다는 점은 가장 큰 문제점이다. 계파 정치의 소용돌이 때문에 정당 정치가 실종되고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당 정치의 실종은 표심의 왜곡 현상을 낳는다.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등 정당 간판을 기준으로 투표하게 된다. 하지만 요즘 유권자들의 정치 심리는 '친이명박''친박근혜'가운데 어느 쪽이냐로 흐르고 있다. 뭔가 이상한 대결 구도다. 야당은 "여당 내분을 즐기자"며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 모두 정당 정치의 본령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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