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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웬 강도(强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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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웬 강도(强盜)?

입력
2010.02.1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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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가 천박한 것은 천하가 다 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의'강도론'다툼도 부끄러운 정치 현실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 고상한 명분을 지키려는 의욕이 앞섰다고 스스로 변호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애초 대통령이'강도'비유를 사용한 것은 고상하지 못하다. 박 의원이 대뜸'내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맞받은 것도 늘 고상한 그답지 않다. 아마도 국민은'웬 강도?'라고 어리둥절할 것이다. 국민에게 생뚱맞게 들리는 말다툼은 승패를 떠나 서둘러 수습하는 게 무엇보다 국민 정신건강에 좋다.

■그래도 굳이 시비를 따지겠다면, 두 사람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한 게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대통령은 충북도 업무보고 자리에서"잘 되는 집안은 싸우다가도 강도가 들면 먼저 강도를 물리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냥 들으면 흔한'가화만사성'이다. 그러나 어느 대목에선가"나는 솔직히 일 잘하는 사람을 밀어주고 싶다"고 말한 게 진짜 화근인 듯하다. 박 의원은 "누가 일 잘하는 사람인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며"집안 사람이 강도로 돌변하면 어떡하느냐"고 격하게 대꾸했다. 대통령이 은연 '대권'을 걸고 들어간 마당에는 단호하게 맞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정치적 화법과 셈법을 국민이 어찌 듣고 보느냐다. 대통령과 박 의원 주변에서는 뻔한 해명과 반박에 목청 높이고, 언론은 맞아도 그만 틀려도 그만인 정치공학 해설에 열 올린다. 그러나 정작 국민은 이런 소란이 싸움의 발단인 세종시 문제의 앞날을 헤아리는 데 아무 도움되지 않는것이 답답할 것이다. 정치적 갈등이 고비에 이른 것은 쉽게 짐작하지만, 저

런 수준의 정치로 난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습다. 그렇지 않아도 세종시 논란에 갈수록 염증을 느끼던 국민은 숫제 고개를 돌릴 만하다.

■세종시 문제 해결에 가장 큰 장애는 국가와 국민과 지역의 명운이 걸렸다고 지레 과장하는 것이다. 원안과 수정안의 옳고 그름을 새삼 논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여러 타협적 대안에는 도무지 관심 두지 않고 사회 전체가 양보 없는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저마다 신뢰와 국익을 내세우지만, 벼랑 끝 대치를 무릅쓸 만큼 절대적이거나 구체적이지 못하다. 그걸 외면한 채 마냥 싸우다 보니, 강도가 집밖에 있는지 집안에 있는지 쓸데 없이 다툰다. 강도는 어디에도 없다. 천박한 정치와 정치인들이 있을 뿐이다. 이제라도 그걸 깨달아야 길이 보일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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