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다가오자 어김 없이 며느리들의 명절 증후군이 도지는 듯 하다. 학과 게시판에는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는 주부 제자들의 하소연이 줄을 잇는다. TV에서는 아내를 도와 주자는 공익 광고가 등장한다. 격세지감과 함께 은근히 걱정되는 면도 있다. 여성주의에 대한 오해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다.
명절에 아내들을 돕자는 슬로건부터 취업 쿼터제까지, 이 땅의 여성 불평등과 사회 곳곳에 도사린 유리천장을 이야기하다 보면 간혹 여성주의를 이기적 여성들이 자신들만 편하자고 내세우는 편향된 논리로 여기는 분들이 있다. 여성주의를 젠더(gender)가 아닌 성(sex)의 개념으로 생각해'여자주의'로 오해하기도 한다.
어느 방송에 나가서 호주제 폐지론을 토론할 때였다. 호주제 수호를 찬성하는 여성 교수가 남녀가 유별하기 때문에 호주제는 존속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핵심은 남녀가 유별한 것이 분명한데, 왜냐면 아주머니는 호칭에 '주머니'를 가지고 있고, 아저씨는 '씨'를 가졌기 때문이란다. 사회문화적 성인 젠더와 생물학적인 성, 섹스를 혼동한 것이다.
여성주의는 특정 성을 옹호하거나'여자'만 혜택을 입겠다는 이기적 발상의 산물이 아니다. 기존의 이분법적 성 역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과 불평등을 불러 일으켰는지 역사적으로 고찰한 현대적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루스이리가라이란 여성주의 학자는 여성주의란 비단 여성뿐 아니라 '광기, 무질서, 모든 저급한 것들 (즉, 모든 소수자들)과의 결합'이라고 주장했다.
기존의 경직된 성 역할에 피해를 입는 것은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남성다워야 한다는 강박은 남성들에게 관계를 수단화하고, 정서적으로 민감해지는 것을 방해한다. 생계를 오직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발상은 남성의 과로를 부추긴다. 여성주의는 획일적 금 긋기를 넘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 주고, 같이 책임을 지고, 기꺼이 연대할 수 있다는 믿음에 다가가는 일종의 정치적 운동이다. 또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여자와 남자로 나뉘어져 있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성 모두를 지닌 양성적 존재라는 가정 위에 양성평등 실천에 힘써왔다.
명절날 성심껏 아내를 도운 남편들이여, 아내에게 당당히 발언하라.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당신이 조금만 더 생계 책임을 함께 져 줄 수 있겠냐고. 반대로 명절날 시댁을 위해 열심히 일한 여성들이여, 당당히 말하라.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조금만 더 가사 일을 나누어 줄 수 있겠냐고.
사이버대학 교수로서 나이 많은 여성 제자들이 가사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무던히 애쓰는 모습에 마음이 짠한 적이 많다. 어렵게 입학한 늦깎이 주부학생이 남편이 학업을 말린다고 자퇴를 하는 경우도 있어 너무도 안타깝다. 올 설날 굳이 어떤 '주의'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위하고 연민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도와주는 남편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또 그런 아들을 격려해 주시는 시부모님들도 많아졌으면 한다. 정말 사람의 모듬살이를 깨달은 아들과 며느리라면 시부모님들의 삶도 함께 보듬어 줄 수 있는 넉넉함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격려해 주시라, 여성주의를. 믿어 보시라, 여성주의가 남성들을 도와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콩 반쪽도 나누어 먹는 심정으로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 그 것이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 마지 않는'따로 또 같이 가는' 진짜 여성주의의 가치가 아닐까.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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