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한심한 파브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한심한 파브르

입력
2010.02.11 00:10
0 0

은현리 빈 들판으로 떼까마귀가 속속 모여드는 것을 보니 북쪽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나 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떼까마귀가 '전원 집합'해서 펼치는 비행연습이 장관이다. 까마귀는 텃새고 떼까마귀는 철새다. 같은 까마귀여서 마을 까마귀는 텃세를 부리지 않고, 철새 까마귀는 무리가 많다고 힘자랑을 하지 않으며 서로 섞여 비행하는 모습이 평화롭다.

떼까마귀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울산 태화강으로 수만 마리 떼까마귀가 찾아왔다는 뉴스가 있은 지 몇 해가 지나자 은현리에도 수천 마리가 날아들었다. 나는 떼까마귀를 군대 규모로 비유한다. 울산 도심에는 군단사령부가 있고 은현리에는 연대본부가 있다. 나는 이웃들이 보기엔 한심한, 은현리에서 해마다 떼까마귀를 관찰하는 '파브르'를 자처한다. 떼까마귀가 하늘을 덮듯이 날아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무리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난다는 것이 내가 알아낸 관찰 결과다. 그것이 전문가에 의해 이미 밝혀진 내용이라도 좋다.

파브르처럼 10권의 곤충기를 남기진 못하겠지만 나는 떼까마귀를 관찰하며 파브르가 된 것처럼 신난다. 조류학자들은 은현리까지 날아온 떼까마귀의 고향이 몽골 북부나 시베리아 동부라고 한다. 그사이 우린 친구가 된 모양이다. 오직 가벼운 몸과 날갯짓으로 날아갈 그 먼 북쪽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 밑바닥이 짠해진다.

시인 정일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