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은 불법계좌로 지목해 수사중인 민주노동당의 CMS계좌는 금융결제원이 민노당의 당비 수납을 대행해주는 공식적인 당비 납부 창구인 것으로 밝혀졌다.
민노당은 이 계좌에 모인 당비 전액을 등록계좌로 정기적으로 이체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미등록 계좌로 돈을 받은 것 자체가 불법"이라며 사법처리 방침을 분명히 했다.
경찰은 지난달 하순 K은행에 개설된 민노당 CMS계좌를 압수수색한 결과, 이 계좌에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100억원, 오병윤 현 사무총장이 재임한 2008년 8월 이후에만 55억원이 민노당의 선관위 등록계좌로 이체됐다고 9일 밝혔다.
경찰은 여기에는 전교조와 전공노 조합원 270여명이 보낸 수천만원이 포함돼 있으며, 나머지 금액의 입금내역은 파악하지 못해 출처를 알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돈세탁', '비밀 금고'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민노당은 이날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CMS 계좌는 1998년 민노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이 개설한 통장을 승계한 것으로, 당원들이 매달 당비를 자동이체 방식으로 납부하는 계좌"라며 "모인 돈은 곧바로 선관위에 등록된 공식계좌로 이체됐다"고 밝혔다.
민노당이 공개한 통장내역에 따르면 2007년 8월부터 2009년 10월까지 15개월 동안 입금된 금액은 총 53억 72만여원이며, 이 돈은 모두 24개의 등록계좌 중 18개로 분산 이체됐다.
민노당 관계자는 "3만 5,000여명의 당원이 매달 1만원씩 당비를 내는데, 한달 당비 수입 3억 5,000여만원이 15개월 동안 들어와서 등록계좌로 고스란히 입금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도 이 계좌에 있던 금액이 모두 등록계좌로 이체된 사실을 인정했다.
CMS계좌는 기관이나 업체가 불특정 다수로부터 돈을 정기적으로 거둘 때 쉽게 이용하는 금융상품이다. 금융결제원이 계약에 따라 각 은행에 흩어져 있는 고객들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서 수납기관의 계좌에 일괄적으로 입금해주는 일종의 수납대행 서비스다.
은행 관계자는 "고객들로서는 자동이체 신청을 위해 은행을 일일이 방문할 필요가 없고, 수납기관으로서는 이체수수료가 싸고 수납현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편리한 서비스"라고 말했다. 실제로 민노당은 그 동안 여러 차례 "CMS 당비 납부 제도를 정당으로서는 처음 도입했다"고 홍보하며 '당원들의 당비로 운영되는 정당'임을 공공연하게 표방해왔다.
문제는 민노당이 이 CMS계좌를 왜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민노당은 "창당 전에 만들어진 계좌여서 승계과정에서 행정상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며 "15일 선관위에 공식 등록하고 미신고에 따른 행정처분을 받겠다"고 밝혔다. 오 사무총장 등 당 관계자들은 "그 동안 이 계좌가 미등록 계좌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그러나 "문제의 계좌는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계좌이며 이 곳을 통해 돈을 받은 것 자체가 명백한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정치자금법상 정당이 미신고 계좌를 운영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과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선관위 관계자는 "일단 해당 계좌에 대해 실사를 한 후 고발 여부 등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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