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젠 정치개혁이다] 한 초선의원의 수입·지출로 들여다본 의정활동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젠 정치개혁이다] 한 초선의원의 수입·지출로 들여다본 의정활동비

입력
2010.02.10 00:11
0 0

■ "후원금 1억5000만원, 사무소 운영·의정보고서 발간도 빠듯"

수도권 초선 A의원은 지난해 주택 담보대출로 3,000만원을 빌렸다. 연간 모금할 수 있는 후원금 한도액인 1억5,000만원을 갖고는 의정활동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자금을 늘리기 위해 대출금으로 주식에 투자했지만 오히려 손실액만 늘어났다. 결국 그는 아내가 쌈짓돈으로 모은 적금을 중도에 해지해야 했다.

비교적 건전하게 정치자금을 쓴다는 평가를 듣는 A의원이 이런 정도이니 대다수 의원들은 정상적으로 받은 정치자금으로 지출을 충당하기가 어렵다. 정치권 내에서는 국회의원 1인당 연평균 정치자금이 3억~4억원 안팎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초선인 경우 2억원 가량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활동 반경이 넓은 일부 중진의원의 경우에는 5억원 이상 들기도 한다. 특히 총선이 있는 해에는 정치자금이 훨씬 더 들어간다.

의원들은 정치자금을 어디에서 충당하고 어떻게 쓰는 걸까. 우선 공식적인 후원금이 첫째 수입원이다.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는 해에는 1억5,000만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돈의 대부분은 지역사무소 운영과 의정보고서 발간 등에 사용된다. 후원회 사무실과 함께 쓰는 지역사무소 운영에는 직원 임금과 임대료 등을 합치면 월 평균 600~700만원이 들어간다. 일부 의원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국회의원회관에 있어야 할 보좌관이나 비서관을 지역사무소에 상주시키고 있다. 지역구의 모든 세대에게 의정보고서를 보내려면 5,00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각종 모임의 식사, 지인들의 행사에 빠짐 없이 보내야 하는 화환, 골프 등 스포츠 모임 등에도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 이들 대부분은 개인 경비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후원금으로 사용할 수도 없다. 때문에 의원들은 생활비인 세비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한 초선 의원은 "그나마 선거가 있는 해에는 후원금을 3억원까지 모을 수 있지만 이는 선거비용 등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며 "화환 보내는 비용만도 매월 300만원 가량 되므로 매달 받는 세비 940만원 가운데 아내에게 400만원만 생활비로 주고 나머지는 활동비로 사용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연간 5,000만~1억원 정도의 정치자금은 개인 돈으로 충당한다"고 말했다.

3선 이상 등 중진 의원으로 갈수록 씀씀이는 커진다. 의원들의 친목 모임에서 좌장 역할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레 돈이 많이 들어간다. 한 중진 의원의 경우 하루에만 식비가 100만원에 이르는 등 한달 평균 최소 4,000만원 이상을 쓰고 있다. 이 같은 현실 때문에 의원들이 회계처리가 안 된 불법 정치자금의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정치자금법에는 '이 법에 의하지 않고는 정치자금을 기부하거나 받을 수 없다'고 규정돼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이 법 테두리를 벗어난 자금을 수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 관계자는"백만원대 규모의 자금을 수수해서 문제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수천만원대의 불법자금을 받았을 경우에는 사법처리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후원금만으로도 의정활동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조직 관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부지런히 지역구를 발로 뛰면 합법적 자금만으로도 정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성호기자

■ 정치자금법 개정 흐름은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과 관련한 부정을 방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인ㆍ단체의 경우 정당 또는 정치인에게 일절 정치자금을 보낼 수 없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연간 1억5,000만원(선거 때는 3억원)이 한도인 후원회 모금으로 버텨야 한다. 정당의 경우 그나마 후원회조차 만들 수 없어 국고보조금과 당비로만 운영해야 하는 형편이다. 정치와 금권의 결탁이라는 부끄러운 과거를 극복한다는 취지에서 정치자금의 수입원을 상당히 제한시킨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후원금은 생명줄과 같다. 미국에선 정치자금을 '엄마젖'(mother's milk)이라고 부를 정도다. 정치자금의 축소만이 최선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때문에 최근의 정치자금법 개정 논의는 투명성이 확보되는 범위 안에서 정치자금의 수입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선 2008년과 2009년 제출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정안은 ▦법인ㆍ단체의 정치자금 기부(연간 최대 5억원 이내) ▦정당 지지자의 소액정치자금(연간 최대 100만원 이내) 기부 ▦지정기탁금제 등을 일부 또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가령 법인ㆍ단체의 정치자금 기부의 경우 선관위에 맡겨 정당에 배분하는 기탁금에 한하여 허용하되, 정당이나 후원회에 직접 기부하는 방식은 계속 제한하자는 것이다. 또 여당 편중 시비가 일었던 지정기탁금제의 경우 전체 기탁금액의 50%만 개인이 원하는 특정 정당에 지급하도록 제한을 두는 방안이 거론된다.

하지만 정치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지난해 3월부터 가동됐으나 주로선거법 개정 문제에만 신경을 썼을 뿐이다. 국회 관계자는 "정치개혁 흐름과 거꾸로 간다는 오해를 받을 것을 우려해서 정치자금법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자금법을 위반할 경우 당선무효 벌금기준을 1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상향조정하고, 50배 과태료 조항을 10~50배로 완화하는 안을 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의원입법 형식으로 개진된 의견들이 있기는 하다. 국회의원 후원회를 폐지하는 대신 법인ㆍ단체의 기탁금을 전면 허용해 연간 500억원 범위 내에서 국회의원에게 균등 배분하자는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정안은 '1만원 미만의 소액 후원금 합산액의 경우 전체 한도액에서 배제'(유성엽 의원안) '정당 국고보조금 배분 기준 조정'(안경률 의원안) '공천 등과 관련한 정치자금 기부 금지'(김희철 의원안) 등 기존법을 보완ㆍ손질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적정 정치자금 규모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 보조금은 '쌈짓돈' 정책 개발은 뒷전

A당의 시도당 회계책임자 전모씨는 2008년 5~9월 심야시간 유흥업소에서 직원 회식비 명목으로 총 10회에 걸쳐 127만5,000원을 사용했다. B당의 김모씨는 정책연구소 및 시도당에 각각 배분해야 하는 1,007만3,237원과 9,884만706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08년 각 정당의 회계보고를 바탕으로 적발한 정당의 국고보조금 전용 사례의 일부다. 이처럼 선관위가 2007~2009년 각 정당에 지급한 국고보조금의 허위보고와 전용 사례를 적발, 보조금을 감액한 경우는 총 12건(총 9,957만4,356원 규모)에 불과했다. 그러나 선관위가 적발한 사례보다 적발하지 못한 사례가 훨씬 많다는 사실은 여야 정당 관계자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해 선관위가 발표한 정당별 2008년도 수입ㆍ지출 내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당들의 수입은 총 2,446억여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치르며 정당이 돌려받은 선거비용(1,068억원)과 전년도 이월금액(230억원)을 제외하면 실제 수입의 대부분은 국고보조금(611억원)과 당비(375억원) 등이다. 정당의 주요 수입원이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국고보조금과 당원들이 내는 당비라는 얘기다. 2008년도에는 선관위가 경상보조금(300억원) 외에도 18대 총선을 위한 선거보조금(311억원) 등을 추가 지급했다.

정당들의 씀씀이는 어떠할까. 2008년도 정당들의 지출 규모는 총 2,199억원으로 17대 대선 당시 차입금 상환 비용이 포함된 기타경비(712억원)를 제외하면 ▦기본경비(560억원) ▦선거비용(457억원) ▦조직활동비(365억원) ▦정책개발비(70억원) 순이었다.

이를 두고 경상보조금 규모에 비해 정당의 정책개발비 지출이 적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현행 정치자금법(제28조 2항)에 따르면 정당은 국고보조금의 30% 이상을 정책개발비로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순수하게 정책개발비로 쓰이는 자금은 많지 않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당의 정책연구소 운영비도 정책개발비에 포함시켜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당 관계자들은 "결국 인건비를 들여 사람이 정책을 개발하는 것 아니냐"면서 정책연구소 운영 비용이 정책개발비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여야 정당들이 정책개발에 돈을 덜 쓴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우리나라 정당의 정책연구소는 장기 비전보다 당파적이고 단기 정책을 개발하는데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정책연구소의 지출 내용에서 인건비와 사무실 운영비 등 기본경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며 "당직자를 정책연구소에 배치하는 식의 편법이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실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소와 민주정책연구원의 2008년도 회계 내역을 살펴봐도 기본경비를 제외한 정책개발에 사용된 비용은 총 비용의 30% 가량에 그친다. 김 교수는 "정당의 정책연구 결과에 대한 엄격한 평가와 함께 감사원에 감사를 맡기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