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부펀드가 지난해 96억달러 규모의 미국 기업 주식을 야금야금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금융위기를 틈타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등 주요 금융회사의 주식을 상당량 확보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 정가에서는 중국이 지분확보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9일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 주요 언론에 따르면 중국 국부펀드는 지난해 금융계를 비롯해 애플, 코카콜라, 존슨앤드존슨, 모토로라, 비자 등 미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이 사실은 중국 정부가 지난 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사상 처음으로 제출한 상세투자내역을 통해 알려졌다.
국부펀드가 가장 많은 투자를 한 미 기업은 모건스탠리로 18억달러 규모다. 이 중 12억달러는 지난해 6월 모건스탠리가 미 정부의 부실금융자산구제프로그램(TARP) 자금 상환을 위해 22억달러 규모의 주식을 발행할 당시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도 중국은 미 사모펀드 블랙록에 7억1,38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애플(630만달러) 뉴스코퍼레이션(410만달러) 등 미국의 상징적인 기업에도 손을 뻗쳤다.
중국의 미 기업 지분 확대는 일단 투자처를 다변화시킬 필요성 때문이다. 2조가 넘는 외환보유고의 절반 가량을 미국 국채에 불균형하게 집중하고 있는 중국 당국으로서는 다양한 투자처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워싱턴 정가는 중국이 기업 내 지분을 바탕으로 미국 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4년 전에도 중국해양석유총공사의 미국 석유업체 우노칼 인수를 무산시키면서 중국을 견제해 왔다.
이를 의식한 듯 중국의 미국 내 투자는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국부펀드의 규모가 3,000억달러임을 고려해 볼 때 미국 기업에 투자한 96억달러는 큰 규모로 보기 어렵다. 게다가 국부펀드는 2007년 블랙스톤에 30억달러, 모건스탠리에 50억달러를 각각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본 터라 투자는 더욱 신중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국이 예전과 달리 SEC에 매우 상세한 투자 내역을 제출한 것도 투명성 확보를 통해 미 정가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의 경제학자인 벤 심펜도르퍼는 뉴욕타임스에 "자료 공개는 중국이 워싱턴의 걱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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