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런 일이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에 10만원짜리 상품권 1장과 편지가 배달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에 진학하게 된 아이의 부모가 2년간 담임을 맡았던 교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보낸 것이었다. 교육청은 이 상품권을 부조리신고센터에 넘겼다(한국일보 4일자 11면).
감사의 마음까지 범죄로 간주
같은 날짜 10면엔 방과후학교 운영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전ㆍ현직 교장 5명이 검찰에 적발된 기사가 있었다. 또 14면엔 '교육 비리 신고액의 10배(1억원까지) 포상'이란 내용의 시교육청 조례(안) 입법예고가 게재됐다. 관련기사라고 여길 수 있는 내용들을 구분해 취급하면서, 유독 '상품권 기사'를 눈에 띄게 처리한 편집자의 의중을 헤아려 보았다. 일선 학교의 현실과 교육청의 인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훈훈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씁쓸한 사연이라고 해야 할까. '상품권 스토리'의 결론은 무엇보다 답답한 현실이었다. 사안을 뒤에서부터 보면, 우선 상품권을 부조리신고센터에 넘긴 교육청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교사들의 '촌지'는 일반적인 뇌물과 구분하여 취급되고 있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 법률을 근거로 신고보상금제도를 운용키로 했다. 4월 시행을 예상하여 입법예고하면서 이 달부터 우선 지침으로 시행하고 있다. 여기서 '범죄'로 취급하는 행위는 3가지로, 직무와 관련하여 금품을 수수하거나 향응을 제공받는 행위, 직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얻거나 시교육청의 재정에 손실을 끼치는 행위, 시교육청의 청렴도를 훼손한 부조리 행위가 그것이다.
문제의 상품권을 부조리신고센터에 보냈다니 '범죄에 사용된 금품'으로 판단했으며 '직무와 관련하여 수수한 금품'으로 여겼다는 얘기다. 졸업을 한 뒤 보낸 감사의 표시도 여기에 해당하느냐의 논란에 앞서, 감독ㆍ처벌권을 가진 교육청에 부탁해 전달하려던 상품권을 '범죄에 사용된 금품'으로 치부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그 학부모가 보낸 편지를 보면 '범죄의 의도'가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교사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적은 뒤 "교육청이 대신 전해달라"고 했다. 교육청은 나름대로 상품권 처리에 많은 고민을 했다지만, 그 학부모가 그런 방법을 택하기까지 했던 고민보다 많았을 리가 없다. 당사자들의 행태나 진정성은 젖혀두고 교육청 자신들의 입장만 염두에 둔 맹꽁이 같은 처사라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가, 특히 교육계가 이 정도의 마음을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답답하다. 담임선생님에게 품었던 감사의 마음, 그것을 당장 표시하면 '직무와 관련하여 수수한 금품'이 되니 졸업 후에야 전하는 마음, 그마저도 직접 주면 선생님이 처벌 받게 될까 봐 교육청으로 우편 발송한 마음 등은 그 학부모만 유독 갖는 마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선생님에 대해, 학교에 대해 여전히 이런 마음을 갖는 학부모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다.
'촌지 박멸'이라는 깃발에 눌려 감사의 마음까지 '범의(犯意)'로 여겨져서는 좋은 사회가 될 수 없다. 교육청이 범죄행위로 간주하는 '직무와 관련한 금품이나 향응'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는 무엇보다 상식과 양식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단죄에 앞서 깊은 헤아림 필요
처음으로 돌아가, 시교육청이 "이런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청렴하게 일을 처리했다"고 언론에 공개할 일이 아니었다. 조용히 그 교사를 불러 편지와 상품권을 건네주며 "교육청에서 책임질 테니 염려 말고 받으세요"라고 했다면, 그 어떤 상식과 양식이 시교육청을 촌지수수의 공범으로 여길 것인가.
교사라는 신분을 가진 쪽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처지에 있는 쪽으로부터 수수하는 일체의 금품과 향응을 무조건 범죄행위로 치부하는 인식은 곤란하다. 시교육청이 지침과 조례를 시행하면서 다소 힘들고 번잡하더라도 깊은 헤아림의 과정을 거쳤으면 좋겠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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