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때부터 줄곧 '늘그막에 작가회의에 이름만 빌려줬다'고 하시던 소설가 최일남 이사장마저 '너무나 모욕적인 처사'라며 흥분할 정도였습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인 도종환 시인이 전한 지난 6일 작가회의 이사회 분위기다. '불법 폭력 시위 불참 확인서'를 제출해야만 정부 보조금 3,400만원을 주겠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문을 받고 긴급 소집된 이 자리에선 시종 작가들의 격앙된 감정이 들끓었다고 한다.
확인서는 작가회의에 2008년 열린 촛불집회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는 사실 확인뿐 아니라, '향후 불법 시위 사실이 확인되면 보조금을 반환한다'는 서약까지 요구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으로 시위를 할 것은 아닌 바에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시위까지 돈으로 예방하겠다는 황당한 발상이다. 비단 자존심으로 버티는 작가 아니라 누구라도 상처를 받을 일이다.
정부 지침을 핑계로 지난달 이미 했던 보조금 지원 결정을 뒤집은 문화예술위의 어이없는행태도 문제다. 32년 간 존속했던 문예진흥원이 2005년 민간 예술가 중심의 문화예술위로 개편된 것은 문화예술 지원에 관변 논리가 개입되던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이번 일을 설명하면서 문화예술위 사무처장이 "우린 힘없는 기관일 뿐"이라고 변명한 것은 이 기관이 자기존립의 이유를 망각했다는 우려만 키울 뿐이다.
작가회의는 8일 확인서 제출을 공식 거부, 정부 보조금 철회는 현실화할 수도 있다. 국내 대표적 문인단체지만 연 수입 7,000여만원에 불과한 작가회의에는 커다란 타격이다. 작가회의는 "기관지 정간, 세계 작가 초청 행사 중단을 각오하고 있고, 이 사실을 세계 작가와 문인단체에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신 치하였던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범, 엄혹한 시대상황을 뚫고 표현과 비판의 자유를 수호해온 문인들의 모임이 작가회의다. 이들에게 닥친 '확인서 제출'의 시련, 해외 작가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궁금하다. 시인 김지하 석방을 요구하며 세계 작가들이 함께 단식투쟁했던 70년대의 광경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가, 기우인가.
이훈성 문화부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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