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새벽 충남 계룡시 우정사업본부 대전우편집중국 상황실. "포항에 장애가 떴습니다. 동해의 기상이 나빠져 포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배가 못 뜰 것 같습니다." 모니터 속에 경북 포항 부근에 동그랗게 빨간 불이 켜지자 직원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울릉도 쪽에 상황 전달하고 기상청 쪽도 연락해서 언제 괜찮아 질 지 알아봐." 권의형 상황 계장이 '칼 같은' 지시에 직원들의 움직임도 빨라진다. 잠시 후 비상 조치가 마무리되자 상황실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원 계장은 "매일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라며 "요즘은 설을 앞둔 '특별 소통' 기간이라 더 긴장된다"고 했다.
이 곳은 '배달 사고 발생율 0%'에 도전하는 우정사업본부 물류시스템의 심장부. 우편물을 제 때 흠집 없이 목적지까지 배달하기 위해 전국에서 벌어지는 '사투(死鬪)'의 지휘 본부이다.
상황실 한 쪽에는 우편물의 접수부터 배달까지 모든 과정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있다. 이 곳에서 위성항법시스템(GPS), 지리정보시스템(GIS) 등을 활용해 전국 도로를 오가는 우체국 차량 1,100여 대의 운행 상태를 손바닥 보듯 볼 수 있다고 한다. 유기권 물류교환과장은 "차량이 한 곳에 20분 이상 머물거나 출발, 도착이 예정 시간보다 30분 이상 늦으면 운전자의 휴대용 정보단말기(PDA)로 곧바로 음성 메시지를 보낸다"라며 "차 고장이나 사고로 길이 막히거나 이상이 생기면 현장에서 상황실로 알리고 상황실은 예비 차를 보내거나 나머지 차량은 돌아 가게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 초처럼 폭설이라도 내리는 날엔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 지 몰라 초긴장 상태라고 한다. 권 계장은 "천재지변이라도 고객들은 너그러이 받아들이지 받는다"며 "폭설을 뚫고서라도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하는 것은 지상 과제"라고 말했다.
옆 화면에는 전국 25개 집중국에 그날 접수 현황, 배달 현황을 실시간으로 집계하고 있다. 전날 하루 동안 접수된 물량을 모두 전산 입력한 후 자동태그(RFID)가 달린 차량이 목적지로 떠나면 자동으로 집계된다. 또 기상청과 한국도로공사 홈페이지를 통해 기상, 교통 상황을 계속 체크하고 있다.
우정본부는 현재 평균 99.8% 배달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이 물류시스템은 해외에 수출되기도 한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우정본부와 시스템을 개발한 SK C&C가 카자흐스탄 우정공사가 추진하는 현대화 프로젝트의 1,2차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며 "몽골,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과도 양해각서(MOU)를 맺었고 매년 1,000억 원 가까운 수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물류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상황실 옆 대전물류교환센터로 옮기자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십 대 트럭에서 부린 짐들이 거대한 벨트를 타고 쉴 틈 없이 움직이다 각자 목적지가 나오면 휙 빠져 나간다. 짐으로 가득 찬 수레(파렛) 수 백 개는 지게차에 이끌려 트럭으로 바로 이동했다. 무거운 수레도 현장 직원들 손에 닿자 어린이 장난감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고리 하나로 10개 넘는 수레를 끌고 가는 수레차 운전사는 곡예사가 따로 없었다.
우체국 택배를 포함, 전국 우편 물량의 30%를 이곳에서 처리한다는 유 과장은 "먼 거리 우편물들이 이곳에 모여 차를 바꿔 타고 되돌아 간다"며 "이렇게 해서 물류비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날은 올 들어 처음 우체국에 접수된 택배 물량이 100만 개를 넘었다. 1일부터 시작된 특별 기간 동안 지난해 설 기간 보다 15∼20% 이상 늘어난 물량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우체국 택배는 특히 외딴 섬, 산 속을 가리지 않고 방방 곡곡을 오가다 보니 팔도의 특산물부터 비닐에 꽁꽁 쌓인 참기름 통, 갓 담은 김치 등 정이 듬뿍 담긴 물건을 구경할 수 있었다.
김희정 충청체신청 물류팀장은 "최첨단 디지털 시스템과 아날로그식 달인들의 손놀림이 어우러진 디지로그 방식"이라며 "저기 벽에 쓰인 네 글자가 우정본부 식구의 목표이자 꿈"이라고 설명했다. 완벽소통(完璧疏通).
계룡=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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