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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 보기] <21> 안압지 출토 14면체 주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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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 보기] <21> 안압지 출토 14면체 주사위

입력
2010.02.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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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있는 안압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인공 못으로 그 모양과 규모 때문에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비되기 전에는 관리가 되지 않아 날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고(故) 박 대통령의 지시로 1971년 청와대에서 마련한 경주관광개발계획에 따라 발굴조사와 함꼐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되어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안압지 출토 나무배[木船]를 소개할 때 언급했지만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된 유물이 15,000여 점에 달해 통일신라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 유물 가운데 최초로 출토된 신라시대의 놀이용구가 있었다. 바로 참나무로 만든 14면체의 주사위인데, 사각형면 6면, 삼각형면 8면의 전체 14면으로 된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의 주사위는 6면의 각 면에 흑점으로 한 점에서 최고 여섯 점의 표시가 되어 있지만, 이 14면체는 한 면 하나하나에 한자(漢字) 네 글자를 새겨두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내용이다. '三盞一去(삼잔일거)'라 하여 '술잔 세 잔을 한번에 마시라'고 하는가 하면, '自唱自飮(자창자음)' 즉 '스스로 마시고 스스로 노래하라' 고 적어놓기도 했다. 모두 14가지의 벌칙을 마련,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벌칙대로 행동하게 한 것이다. 신라 귀족들의 놀이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그런데 국립경주박물관에 마련되어 있는 안압지관은 이 주사위를 주령구(酒令具) 즉 술 마시는 자리에 사용하는 놀이용구라고 설명하고 있으면서도 전시품은 복제품이라고 하고 있다.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유물이 보존처리 과정에서 불에 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문화재보존과학의 수준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이지만 안압지가 발굴된 70년대는 그야말로 걸음마 단계에도 미치지 못했다.

당시 이 유물의 보존처리를 위해선 우선 습기를 빼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전기 오븐에 넣어 천천히 수분을 제거하기로 했는데, 당시의 전기 전압은 백열등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할 정도로 들쭉날쭉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전압사정을 모르고 전기오븐을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유물은 전기 과부하로 인해 잿덩이로 변해버렸다.

당시 보존처리를 맡았던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실은 지금의 경복궁 서편 담장 밖에 있는 정부종합청사 창성동 별관건물 1층에 있었다. 이 유물이 전기의 과부하로 타면서 하마터면 건물이 화재를 입을 뻔한 일 때문에 종로경찰서에서는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여 당직자는 물론 담당자를 오라 가라 한 사실도 기억에 남는다. 청와대 코앞에 있는 건물이라 의심을 받은 것이다.

이런 아픈 경험은 우리나라 본존과학 수준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복제가 가능했든 것은 보존처리에 앞서 사진 촬영과 정밀 실측을 해 둔 덕분이다. 35년 전의 일이지만 문화재를 다루는 일에선 한번의 실수라도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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