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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1주기-바보가 바보들에게] <1>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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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1주기-바보가 바보들에게] <1>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입력
2010.02.0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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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은 고 김수환(1922~2009ㆍ스테파노) 추기경 선종 1주기가 되는 날이다. 본디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큰 법이라지만 그의 부재가 가져온 허전함은 유달랐다. 1년 전 긴 줄로 명동성당 앞을 메웠던 가슴들에는 아직 지난 겨울의 시린 바람이 남아 있다. 그러나 김 추기경 선종 후 1년은 그를 잃은 상실감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으로, 이어 사랑의 기적으로 화하는 모습을 목격한 시간이기도 했다. 김 추기경이 남긴 메시지를 통해 그의 삶과 죽음이 한국 사회에 준 영향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스스로를 '바보'라고 낮췄던 고인이, 진짜 바보들인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만년의 김 추기경은 50여년의 사제 생활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때로 1951년부터 2년 남짓 대구교구 안동본당 주임신부로 지냈던 시절을 추억하곤 했다. 너무나 가난했기에 때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교인들과 함께 우는 것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천성이 순박하고 여렸다. 그러므로 한없이 겸손하고 너그러웠다. 김 추기경은 평생 그런 사랑을 실천했다.

지난 40여년 동안 그가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따스한 언덕으로 자리한 것은 그런 자애로움 때문이다. 가톨릭 세계 내에서의 위상이나 정치적 영향력은 그 다음이다. 배를 곯던 때나 먹고 살 만해지고 나서나 한국인들은 여전히 살풍경한 하루하루를 헤쳐가고 있는데, 김 추기경은 존재만으로 위안이 되는 후덕한 할아버지 같았다.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안병철 신부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제가 1981년 김 추기경의 주례로 신부 서품을 받았는데, 그 날 동기와 함께 둘이서 서품을 받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전에 동기가 신부의 길을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서품식날 김 추기경은 '사제가 되고자 결심하는 것도 중요한 결정이지만, 포기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중요한 결단'이라고 말씀했어요. 떠난 동기가 마음의 짐을 떠안고 살까 걱정하신 거죠."

모든 이를 구별 없이 사랑하는 김 추기경의 면모는 군사정권 시절도 마찬가지였다고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기억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허윤진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김 추기경에게 독재정권은 타도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구원의 대상이었죠. 김 추기경에게는 적과 아군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핍박 받는 민중들을 걱정하듯이, 탐욕에 사로잡힌 권력자들도 걱정하셨습니다."

겸허하게 모두를 사랑하다 떠난 김 추기경의 삶은 그를 닮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번지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 선종 이후 지난 1년 동안 예비신자(세례를 받기 전의 신자)의 수가 평년에 비해 30~40% 정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3분의 1 가량은 '김 추기경의 장례를 본 후 그 분의 소박함과 박애정신에 이끌려 성당에 나왔다'고 고백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짜 기적은 교회를 벗어난 곳에서 목격된다. 김 추기경은 20년 전인 1990년 각막 기증을 서약하고, 선종 직후 두 사람이 그로 인해 새로운 빛을 찾았다. 국립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전국에 접수된 장기 기증 희망자는 모두 18만5,000여명으로 2008년의 배를 훌쩍 넘기는 폭발적 증가를 기록했다.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장 김용태 신부는 "김 추기경의 박애정신이 우리 사회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미사·유품전·음악회… 추모행사 잇달아

김 추기경 선종 1주기를 맞아 추모 미사와 전시 등 여러 행사가 열린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선종일인 16일부터 3월 28일까지를 공식 추모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은 사순절 기간과도 겹친다. 추모 미사는 16일 오후 7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 주교단,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봉헌된다. 일요일인 21일 오전 11시에는 김 추기경이 안장된 경기 용인시 성직자묘역에서 염수정 주교와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추모 미사가 열린다.

16일부터 5월 23일까지는 서울 절두산 순교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 유품전이 열린다. 김 추기경이 40여년 동안 낀 주교 반지, 유학 시절 사용한 교재, 바티칸 여권 등 140여점의 유품과 밀랍인형 등이 전시된다. 18~27일에는 가톨릭미술가회 작가들의 추모작품전, 3월 3~16일에는 김 추기경이 소장했던 미술품전이 명동 평화화랑에서 연이어 개최된다. 3일 시작된 사진전도 12일까지 평화화랑에서 계속된 뒤, 16~28일에는 명동성당 들머리로 자리를 옮겨 이어진다.

18일 오후 8시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김덕기 서울대 교수의 지휘로 추모 음악회가 열린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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