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정경운(鄭慶雲)이 쓴 <고대일록> (孤臺日錄)이 번역·출간되었다. 이 책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년)부터 18년 간에 걸친 일기이다. 임진왜란 이후의 일기는 미암(眉菴) 유희춘(柳希春)의 <미암일기> (眉菴日記), 오희문(吳希文)의 <쇄미록> (鎖尾錄), 이순신(李舜臣)의 <난중일기> (亂中日記),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 (懲毖錄) 등 37종이 전한다. 이러한 일기들을 통해 임진왜란의 실상을 알아볼 수 있다. 전란 중에는 국가의 기록이 미비한 상태이니 더욱 그러했다. 징비록> 난중일기> 쇄미록> 미암일기> 고대일록>
<고대일록> 의 저자는 정인홍(鄭仁弘)의 제자인 정경운(鄭慶雲)이다. 정인홍이 남명 조식(曺植)의 제자이니 정경운은 조식의 재전제자이다. 정경운은 진양인(晉陽人)으로 1556년(명종 11년) 2월 29일에 경상도 함양읍 백연리(栢淵里) 들뿍에서 태어났다. 그는 2세에 부친이, 9세에 외조부가, 13세에 어머니가, 15세에 외조모가, 19세에 형이 차례로 죽었다. 이 때문에 어린 시절에 외조부모와 형 내외에게 의탁해 살았다. 그러다가 1581년(선조 14년) 26세 때 내암(乃菴) 정인홍의 제자가 되었다. 고대일록>
그의 일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년) 4월 23일부터 1609년(광해군 1년)까지 18년 동안 4권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남아있는 <고대일록> 은 정경운이 직접 쓴 원본은 아니다. 초서로 된 원본은 넷째 아들 정주석(鄭周錫)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9대손 정용호(鄭龍鎬) 때 소실되었다. 지금의 <고대일록> 은 8대손 정동규(鄭東圭)에 의해 필사된 것이다. 이 때 필사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영원히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희귀자료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일록> 고대일록>
원본을 필사할 때 80군데에 결락이 있었다. 필사본이 손상을 입은 것이다. 손상된 곳에는 '결(缺)'이라고 표시해 두었다. 자료의 신빙성이 있는 것이다. <고대일록> 은 매일 일어난 일을 일기체로 썼지만 임금의 행적과 관료들의 행태까지 기록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관보(官報)·격문(檄文)·교문(敎文)·통문(通文)·사신(私信) 등을 이용했고, 그것을 따로 <별록> (別錄)에 수록했다. 그리고 시문은 별도로 <시집> (詩集)에 수록했다. 시집> 별록> 고대일록>
이 책은 저자가 유학자이기 때문에 춘추대의(春秋大義)에 의해 집필되었고, 그가 김성일(金誠一)과 김면(金沔)의 소모사(召募使)였기 때문에 의병의 활동을 누구보다도 소상히 기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남계서원(南溪書院)의 이건과 배향문제로 향전(鄕戰)에 말려들어 마음고생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임란연구와 향촌사회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고대일록> 이외에 정경운의 종매부 박여량(朴汝樑)의 친필일기 <감재일기> (感齋日記)가 또 있다. 이 책은 함양읍에 거주하는 박여량의 후손 박호정씨의 집에 보관되어 있다. 이는 경상대 경남문화연구원에서 소개한 적은 있으나 아직 번역·출간한 적이 없다. 후속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감재일기> 고대일록>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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