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난 뒤 텅 빈 무대와 객석에 남는 것이, 노랫말처럼, 서글픈 고독과 정적뿐일까. "아니요. 꿈의 발자국이 남죠. 그건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배우들의 몸짓이 휘젓고 간 그 텅 빈 무대에서 연극인 최철(38)씨는 구체보다 오롯한 잔상을 보는데, 그것을 희망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연극 '리스트'의 마지막 공연이 막을 내린 뒤에도 그의 낯빛은 차돌처럼 단단하고 투명했다. 실금 같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더니 이런다. "제게 염색이 생활이라면, 연극은 제가 꾸는 꿈의 몸짓입니다."
그의 생업은 감이나 소목, 쑥, 괴화 따위 한약재로 즙을 짜 옷감에 물을 들이는 천연 염색이다. 염색해서 번 돈으로 그는 2005년부터 거의 매년 이맘때 연극 무대를 짜왔다.
희곡도 직접 쓰고 배우와 스태프도 그가 캐스팅하고, 연출도 물론 그가 맡는다. '호박씨 까서 한 입에 털어 넣'느라 그렇게 분주히 연말과 연초를 보낸 뒤 그는 무대 소품과 의상 따위를 트럭에 싣고 생계의 터전인 경북 문경으로 내려간다. 몸짓의 잔상, 꿈의 여운을 즐기며.
그의 약력. 수원가톨릭대 91학번. 고교시절 해방신학에 빠져 남미 어디쯤 가서 게릴라 신부로 활동하고팠지만, 뜻도 무뎌지고 기질도 여의치 않아 98년 중퇴. 그는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더라"고 했다. 해서 선택한 게 연극이었다.
서울예대 극작과 99학번. 하지만 연극도 열정만으로는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감물 천연염색 일은 '장남주 옷'이라는 전통의상디자이너로 꽤 알려진 장남주씨와의 인연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원단을 제주도에서 납품 받아 쓰셨는데 수급이 원활하지 않고 가격도 만만찮았나 봐요. 제가 배우겠노라 큰소릴 쳐버렸죠."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자타공인 천연염색 전문가다.
감물 염색은 풋감이 열리는 여름이 가장 바쁘다고 한다. 실한 풋감을 따서 손질해 분쇄기로 빻고 탈수기로 돌려 넉넉히 즙을 낸 뒤 변질되지 않도록 저장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해둬야 한다. "면이나 마를 감물에 담가 치댄 뒤 말리면 감의 탄닌 성분이 햇볕의 자외선과 반응해 물이 들죠. 치대고 말리는 공정은 4, 5일씩 걸리는데,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옷감이 얼어 작업을 못하는 겨울이 그에겐 휴가인 셈인데 한 해 동안 번 돈과 휴가를 연극에 몽땅 쏟아 부어 온 것이다. 틈틈이 작품 구상도 하고 희곡도 써야 했을 테니 1년 내내라고 해야 옳을까.
그의 연극은 대체로 정치ㆍ사회적인 메시지가 짙다. 2005~07년의 세 차례 공연은 혁명의 의미와 가능성을 주제로 한 연작이었고, 지난해 공연 '삽질'에서는 현 정부의 실정을 풍자했다. 올해 공연은 용산참사가 모티프였다. 이번 작품엔 노동문화운동가 김호철씨도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대관료와 인건비 등 제작비가 편당 2,500만~3,500만원 정도 들어요. 첫 공연 때는 몽땅 말아 먹었지만, 해마다 출혈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예요. 이번 공연은 이인극이라 개런티가 적게 든 데다 신학교 동문 선후배와 친구들 후원도 받았고, 유료 관객도 적잖이 들어 적자를 거의 안 본 것 같아요." 그는 내달 4일 경북 상주 개운동 성당에서 '초청 앙코르 무대'도 갖는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는 대학로 귀퉁이 그늘진 곳에라도 번듯한 공연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 꿈을 위해 그는 또 열심히 (옷감)치대고 (작품과)씨름하고 (사람들과)부대낄 것이고, 올 연말쯤 다시 두툼한 희곡뭉치 챙겨 들고 대학로에 나타날 것이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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