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은 80년대 초부터 대규모의 택지개발이 필요할 때마다 개발이 논의 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이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은 이곳과 판교 일대를 보존할 필요가 있으니 그린벨트에 준해서 관리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뒤 정부는 행정명령에 의하여 이 일대에서 일체의 개발행위를 금지, 그린벨트처럼 규제해 왔다. 88년 내가 경제수석으로 있으면서 개발하려 했지만 그러한 취지에 따른 건설부의 요청으로 유보했던 것인데, 그 후 주택문제가 심각하게 급전되어 개발하기로 문희갑 수석과 합의 했었다는 것을 앞에서 밝힌 바 있다.
5백여 만평에 이르는 분당의 개발예정지는 논36% 밭33% 임야23% 그리고 기타 8%로 구성되고 있었다. 이것을 개발하여 40만명 내외의 인구를 수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나는 즉시 건설부로 하여금 분당에 대한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토지개발공사의 협조를 얻어 신도시의 경계를 정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여 올라온 당초의 분당 신도시 경계는 현재 개발에서 제외되어 있는 탄천과 경부고속도로 사이의 땅이 모두 포함된 것이었다.
89년 초 나는 번동의 영구임대주택 기공식에 참석한 다음 분당으로 현지답사를 갔다. 분당은 내가 경제수석 때 한번 가 본 일이 있어 두 번째이긴 했으나 내게는 매우 생소한 곳이었다. 서울공항을 지나서부터는 먼지 많고 좁은 비포장 도로였다. 분당에는 탄천이 흐르고 있는데 그 주변은 모두 논이었다. 그 논에는 여기저기 화훼단지와 비닐하우스 그리고 허술하게 지어 놓은 창고 또는 작은 공장 등이 간간이 널려 있어 정돈되지 않은 황량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동쪽으로 있는 산의 계곡은 밭이었는데, 토박이도 있었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가난한 농민들이 지주로부터 땅을 빌려 채소농사를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분당에서 광주 쪽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고개이다. 여기를 오르면 현재의 열병합발전소 바로 위에 고려충신의 비석을 모신 비각이 있는데, 여기서는 분당 일대를 눈 아래 볼 수 있다. 우리는 분당 일대를 둘러본 뒤 이곳에 올라 분당의 전체 모습을 보았다. 분당은 동쪽으로 문형산 숫돌봉 문수산 등 높이 200미터 정도의 수려한 산과 서쪽으로는 남서울 골프장 뒤로 500m급 산들 사이에 있는 평야공간으로 수려하고 쾌적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가 도로와 철도 등 교통접근성도 양호하고, 서울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5대 신도시 중 시민들의 수요도 제일 높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서울공항의 이착륙으로 인한 소음이 문제였다.
나는 공항 소음의 영향이 어떤지를 조사하도록 했다. 기술진이 동원되어 소음을 측정하고, 주민들에 대한 소음피해조사도 해보고, 직원이 그곳에 유숙하면서 직접 소음을 경험해보도록 하기도 했다. 그래서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직선상에 있는 직접피해지역은 개발에서 제외토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탄천과 경부고속도로 사이의 공간이 개발에서 빠지고 분당의 경계지형이 무슨 동물 머리모양처럼 이상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누구 땅을 보아주기 위해 그랬느니 하면서 언론과 국회에서 여러 번 말썽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정치권에 비화되어 나는 연일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에 불려 다녀야 했다. 그 당시 건설위원회는 위원장에 공화당의 오용운 의원, 위원에 민정당의 서정화(인천) 김영선 박재홍 이민섭 이웅희 이학봉 이해구 장경우, 평민당의 송현섭 김영도 김주호 신기하 이원배, 통일민주당의 김동주 김운환 문준식 황대봉 그리고 공화당의 최무룡 이인구 의원 등이었다. 이분들이 내게 가장 많이 추궁한 것은 분당에서 어떤 재벌의 땅은 개발에서 제외해 보아주고 어떤 재벌의 땅은 포함시킨 경위를 밝히라는 것이었는데, 특히 야당에서는 재벌 땅을 피해가느라 유례 없는 기형도시의 모습이 되었다고 몰아세웠다.
많은 기업들이 분당 신도시 부지 부근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대한제분 5만9,000평을 비롯하여 금호그룹 2만평 명지학원 5만2,000평 등은 모두 개발에 포함되었다. 한 가지 인상 깊은 일은 박성용 금호그룹 회장이 찾아와 회사로서는 긴요한 시설이 그 안에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되는가를 묻기에 내가 정부 방침을 말씀 드렸더니 선선히 정부 방침에 다르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모두 이분만 같으면 일할 만하겠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분당의 경계를 확정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예견하고 확실한 기준을 적용했던 것이다. 개발에서 제외되는 기준은 그린벨트 또는 공원구역, 군사시설 보호 구역, 비행안전고도 유지선, 표고 100m 이상 및 경사 30도 이상의 산지 등이었다. 이 기준에 따라 통일교의 270만평 두산그룹의 10만평 극동건설의 140만평 등이 제외되었다. 통일교의 땅은 표고 100m 이상의 급경사지였고, 두산그룹의 땅은 군사시설 보호구역이었다. 그리고 극동건설의 땅은 경부고속도로 서쪽에 위치하여 도시계획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렇게 국회에서 설명을 드렸지만 국회의원들은 아랑곳없이 나를 불러 성토했으며, 야당에서는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국회에서 답변 도중 쪽지가 들어와 펼쳐보니 일산에서 신도시 문제로 자살자가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였다. 답변대에 서 있는 내게 식은땀이 흘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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