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환헤지 파생상품인 키코(KIKO) 법정공방에서 은행이 판정승을 거뒀다.
법원이 키코 관련 첫 본안 소송에서 은행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 판결은 나머지 유사소송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나쁜 상품 아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 임성근)는 8일 ㈜수산중공업이 우리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 반환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아이티씨가 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우선 "키코 계약은 '부분적 환 위험 회피'가 목적인 상품이고, 은행의 이익률도 다른 금융거래와 비교해 현저히 과다하지는 않다"고 밝혔다.
'기업 입장에선 결코 환 위험을 회피할 수 없는 사기 성격의 상품'이라는 원고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 상품 자체가 은행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불공정 약관으로 무효'라는 기업측 주장 역시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은 원고와 피고 간 각각의 개별 교섭에 따라 결정된 것인 만큼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대상인 약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이어 "계약 체결 당시 국책연구소와 대다수 전문가들이 환율 하락을 예상했고 2008년 이후 환율이 급등한다는 예견은 없었다"며 "은행들이 환율변동 위험 가능성 등에 대한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상생의 관계가 돼야 할 기업과 은행이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게 돼 참으로 안타깝지만,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로마법의 대원칙은 이 사건에서도 유효하다"며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환영과 반발
은행측은 "예견된 판결이다"고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키코가 상호간의 정상적인 계약관계를 기반으로 한 상품인데다 은행이 불완전 판매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받았다"며 "손실 규모를 떠나 키코가 더 이상 분쟁의 소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권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7월 키코 약관에 대해 불공하지 않다고 결정했고, 이후 법원이 기업들이 낸 키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잇따라 기각한 바가 있어 어느 정도 승소를 예상해 왔다.
반면 키코 피해 중소기업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적어도 100여개 기업이 1조원 이상의 환손실을 보상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말 기준으로 키코 관련 잔액은 약 14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금융당국은 키코 잔액 자체가 예상 피해액 규모로 볼 수 없는데다 피해기업들이 손실액의 상당 부분을 이미 은행에 상환을 했거나, 원화대출로 전환해 피해 기업들이 줄도산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키코 피해 중소기업의 모임인 환헤지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재판부가 피고인 은행 측을 상대로 키코 상품의 마진 구조와 관련된 핵심 자료를 제출하라고 지시했음에도 은행 측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며 재판부가 이를 그대로 수용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즉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 키코(KIKO)란?
은행이 수출기업들에 판매하는 환헤지 통화옵션상품.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미리 정한 환율로 외화를 은행에 팔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상품이다.
환율이 내리면 기업이 이익을 보고, 반대면 환율이 오르면 은행이 이익을 갖는 구조인데 만약 환율이 약정범위를 벗어날 경우 기업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예상을 깨고 환율이 900원대에서 1600원대까지 치솟자,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은 이 상품을 판 은행들을 향해 'S기(사기)꾼'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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