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 위로 색색의 장미 꽃봉오리가 떠다닌다. 달빛은 교교하고, 주변의 단아한 주택은 낭만의 향취를 더한다. 호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던 남녀는 농밀한 키스를 주고 받는다. 제목부터 달콤하기 그지없는 영화 ‘발렌타인 데이’의 마지막 장면이다. 참 낭만적이다.
출연 배우들의 얼굴만 봐도 관객들의 애정지수가 급상승할 듯하다. 배우들 면면이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에 버금갈 만큼 눈부시다. 여자배우로는 제시카 알바와 제시카 비엘, 제니퍼 가너, 앤 해서웨이, 줄리아 로버츠 등이 스크린을 수놓는다. 하나같이 주연급이다. 남자배우들의 중량감도 밀리지 않는다. 애쉬튼 커처, 제이미 폭스 등이 등장한다. 추억의 배우 셜리 맥클레인과 캐시 베이츠, 그리고 ‘팝의 요정’ 테일러 스위프트가 빛을 더한다. 배우들의 빛나는 얼굴은 스크린을 사랑의 무드로 채우고도 남을 지경이다. ‘노트북’과 ‘시간여행자의 아내’ 등 로맨스 영화에서 호연했던 레이첼 맥아덤스가 오디션에 참여했다가 배역을 얻지 못했다는 후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목이 명시하듯 발렌타인 데이에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가 125분 동안 펼쳐진다. 2월에도 여전히 햇볕이 따사로운 로스앤젤레스가 배경이다. 초등학생부터 70대 노부부까지 주인공들 대부분은 화사한 발렌타인 데이의 아침을 맞는다. 꽃집 사장 리드(애쉬튼 커처)는 파자마 바람으로 동거녀 모리(제시카 알바)에게 청혼을 하고 “예”라는 대답을 얻는다. 줄리아(제니퍼 가너)도 해리슨(패트릭 뎀시)과 침대에서 가슴 설레는 사랑의 하루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들의 격정적인 심장 박동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모리는 “부담스럽다”며 리드의 청혼을 완곡히 물리치고, 줄리아는 이혼남이라 믿었던 해리슨이 가족과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부인 에스텔(셜리 맥클레인)은 백년해로했다고 믿는 남편에게 젊은 시절의 ‘바람’을 고백한다.
하지만 발렌타인 데이 전세계 극장가를 겨냥해 만들어진 영화 아닌가. 등장인물들의 시련은 사랑이 가져다 줄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영화는 그렇게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주저없이 사랑하라고 외친다. 같은 성별을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낭만의 대열에 동참시키며 사랑의 전령이 되길 자처한다.
감독은 게리 마샬. 고희를 훌쩍 넘긴 76세의 나이에도 사랑의 떨림을 전하는 솜씨가 젊디 젊다. 배우들의 지명도에 매몰되지 않고 완급을 조절하며 제법 품격있는 상업영화로서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예전에 로데오 거리 와본 적 있냐”는 운전사의 질문에 줄리아 로버츠가 던지는 대사는 이 감독과의 남다른 인연을 강조한다. “딱 한 번 있어요. 내 출세작인 ‘귀여운 여인’ 찍을 때.”
여러 인물을 등장시키는 설정은 신선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썩 나쁘지 않은 데이트용 영화다. 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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