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은 경영상 불법행위의 책임을 지고 현대차에 70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기업 경영 판단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재량범위를 일탈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면 형사는 물론 민사 책임도 져야 한다는 판결이다. 소액주주의 경영권 견제를 인정해 재벌 오너의 전횡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부장 변현철)는 8일 김모씨 등 현대차 소액주주 14명과 경제개혁연대가 정 회장과 김동진 현대모비스 부회장을 상대로 “회사의 손실을 배상하라”며 낸 주주대표소송에서 “정 회장은 현대차에 총 손해액 1,400억원 중 700억원을 배상하되, 이 가운데 50억원은 김 부회장과 연대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회사 대신 소액주주가 대표 소송을 제기해 회사 손실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물은 판결 중 최고액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오너 개인의 연대보증 채무를 없애거나, 경영권 유지를 위해 나머지 계열사를 동원하는 족벌경영의 문제가 드러난 사안”이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재판부는 이어 “정 회장이 회사 자금을 이용해 현대우주항공 현대강관 등 계열사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은 비록 안정적 연료공급이라는 경영판단의 성격도 있지만, 당시 여건상 회사에 손실을 가져올 구체적 가능성이 충분했다”며 경영 자율성보다는 경영책임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다만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라는 비상상황에서 대기업 최대 주주가 법적 책임을 지도록 유도하는 정부 정책을 따른 점과, 정 회장이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한 점 등을 참작해 지급액수를 조정했다”고 덧붙였다.
현대ㆍ기아차 소액주주들과 경제개혁연대는 2008년 5월 “정 회장과 김 부회장이 현대우주항공, 현대강관에 대한 불법 유사증자 참여와 현대모비스에 대한 부당지원 등으로 회사에 5,631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앞서 손해의 당사자인 현대차에 소송 제기를 요구했으나 현대차는 “경영상의 판단에 따른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정 회장은 이 문제를 포함한 현대차 비리수사로 구속기소돼 2008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 받고 형이 확정됐으나, 같은 해 광복절에 특별 사면됐다.
강아름 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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