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1980년 대까지 한국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럴 수도 있다'였다. 실제로 필자가 대학을 다닌 80년대 후반만 해도 명문대학에 지방과 저소득층 출신 자녀가 진학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았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도 있었다. 교육에서의 성공은 개인의 노력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그에 따르는 출세는 정당한 보상이라는 오래된 주장이 한국에서는 유효하게 받아들여졌다.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떠할까?
불평등구조 고착 징후
학교 교육을 통한 사회경제적 지위획득 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교육학 방면의 사회이동(social mobility) 연구에 속한다. 위에서 언급한 입장은 업적주의 관점을 대표한다. 반면 학교 교육에서의 성공과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지위획득은 단지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가정 배경에 기인한다는 관점도 있다. 물론 가정배경-학교교육-지위획득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방식은 대단히 복잡하고 이를 설명하는 관점도 다양하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교에서의 성공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 있으며, 가정의 문화적 풍토가 자녀의 문화적 습관을 경유하여 학업 성취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자녀가 학교에서 성공하는 데 직접 영향을 주는 요인은 부모가 자녀에게 제공하는 포부 수준과 같은 심리적 기제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서구사회에 기반한 사회이동에 관한 다양한 이론을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 적용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이론을 한국에 소개한 당시'진보적인'교육학자들을 다소 당혹스럽게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는 확연히 변했다. 1990년대에 희미하게나마 학교 교육과 사회적 불평등의 관계에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 이미 우리 사회에서 학교 교육이 신분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등장했다.
수능 및 내신 성적과 부모의 사회, 경제, 문화적 수준과의 관계에 대한 백병부와 김경근 교수의 2007년 연구에 따르면, 수능 성적이 내신 성적에 비해 부모의 경제력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또 수능 성적과 내신 성적 모두에 대해 학생이 속한 사회문화적 수준이 상대적으로 큰 효과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홍콩 중문대학교의 김두환 교수는 부모의 경제적 배경보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세대 간 결속을 중심으로 교육 성취의 불평등을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의미한 타자(곧 부모)와 학생 사이의 관계가 학업 성취에 기여한다는 콜맨(Coleman)의 주장이 한국 사회에서도 검증되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배경 요인보다 부모-자식 사이의 심리적 관계에 주목해서 흔히 위스콘신 사회심리모형이라고 불리는 이 이론은 다분히 미국 중산층 가정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이론을 처음 알게 된 학부생 시절, 필자는 코웃음을 치면서 한국 사회에 작동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이론까지 우리 현실에서 검증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학교 불평등 구조가 사실상 고착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징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의 문제로 다뤄야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이미 학교 교육의 불평등이 작동하고 있는 사회이다. 이는 사회적 출세를 위한 사회적 장치에 다수의 사다리가 존재함으로써 여전히 자수성가가 가능한 미국과도 다른 상황이다. 학교 교육의 혜택을 독점하는 사태는 계층 간 갈등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국가 및 사회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자녀 교육의 배타적, 독점적 상황은 단순히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학교에서의 경쟁이 불공정하고 사회적 지위가 독점되는 사태는 공공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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