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이 명맥은 유지하되 오너 일가의 분리경영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주식 담보 제공 등을 거부해온 오너 일가가 8일 채권단의 압박에 사실상 백기투항하면서 그룹 전체가 채권단 관리에 놓이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오너들이 석유화학분야와 항공ㆍ산업분야를 분리경영키로 하면서 재계 서열 8위권에 올랐던 금호그룹은 위상 추락이 불가피하게 됐다.
오너 일가 백기투항 왜
그간 경영부실 책임론에 정면으로 맞섰던 박찬구 전 화학부문 회장과 박철완 그룹 전략경영본부 부장(고 박정구 전 회장의 장남) 등이 결국 계열사 주식의 담보 제공에 동의한 것은 채권단이 금호석화의 워크아웃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초강수를 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주회사격인 금호석화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곧바로 그룹 전체가 채권단 관리에 놓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너 일가는 금호산업 지분 10%(시가총액 기준 300억원)외에 금호석화 지분 47%(시가총액 기준 2,200억원)로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해왔다. 따라서 금호석화의 워크아웃 돌입은 실질적인 경영권의 박탈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더욱이 채권단이 부채 비율을 줄이기 위해 금호석화의 감자를 단행하거나 상당 부채를 출자로 전환하게 되면 오너 일가의 지분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금호석화 지분을 약 17% 보유한 박찬구 전 회장 부자와 12%를 갖고 있는 박철완 부장 등이 그룹 전체를 잃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사재출연 대신 경영권을 인정받는 ‘차악’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계열 분리로 가나
금호그룹의 외양은 유지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계열사별로 분리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박삼구 명예회장이 종전대로 그룹 명예회장으로 남지만, 그간 박삼구 명예회장과 각을 세워온 동생 박찬구 전 회장과 박 부장이 금호석화의 경영권을 맡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채권단의 이날 결정은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는 측면이 강하다. 채권단은 박삼구 명예회장이 금호타이어를, 박찬구 전 회장과 박철완 부장이 금호석화를 경영한다는 오너 일가의 합의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아시아나항공과 나머지 계열사들에 대해서는 채권단 협의 등을 통해 추후에 경영주체를 결정키로 했는데, 특히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돌입하기 직전 금호석화로 넘긴 아시아나항공 지분 12.7%의 환원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는 사실상 박찬구 전 회장 등이 석화부문을 맡고, 박삼구 명예회장이 산업ㆍ항공을 맡는 식으로 가게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욱이 박찬구 전 회장측이 금호석화가 금호타이어의 지분 47.3%를 보유하고 있지만 박삼구 명예회장의 경영권 행사에 관여하지 않을 것임을 채권단에 약속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삼구 명예회장의 지위가 그대로 유지된다지만 이는 명목에 불과할 뿐 결국은 계열 분리로 가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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