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등 기후변화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자료를 조작한 '기후게이트(Climategate)'논란이 뜨겁다. 지난해 말 불거진 논란의 중심은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가 2007년 보고서에서 히말라야 빙하의 소멸을 경고하면서 엉터리 데이터를 제시한 것이다. IPCC는 히말라야 빙하가 이대로 줄어들면 2035년에는 사라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게'2350년'을 오기(誤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오류가 단순한 실수인지, 막대한 연구비와 이산화탄소 거래이권 등이 얽힌 고의적 조작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드문 혹한과 겹쳐 온난화 회의론이 힘을 얻는 분위기에 맞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위험을 일깨우는 경계론도 거세다. 그러나 2007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IPCC의 공신력이 추락하고, 기후변화 정책에 대한 반대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기후변화 논쟁과 언론의 책임
지난 주, 국내신문의 환경전문기자가 쓴 칼럼과 미 예일대'기후변화와 미디어 포럼'이 IPCC 보고서의 오류를 추적한 논문을 흥미롭게 읽었다. 기자칼럼은 기후게이트 논란 속에 우리 학계만 조용한 것을 비판했다. 이에 비해 예일대 포럼은 학계와 국제기구, 환경전문기자와 언론 등 모두가 기초 검증에도 소홀한 채 선정적 주장을 앞다퉈 전파하는 근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예일대 포럼에 따르면, IPCC 보고서의 오류는 빙하 전문가 코티야코브의 1996년 논문에서 출발했다. 이 논문은 "극지 빙하가 재앙적 속도로 줄고 있어 2350년에는 50만 평방킬로미터 가운데 10만 평방킬로미터 넓이만 남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1999년 인도의 환경전문지에 인도 학자가"히말라야 빙하가 특히 빠른 속도로 줄고 있어 2035년에는 거의 사라질 것"이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50만 평방킬로미터에서 10만 평방킬로미터로 줄 것'이라는 코티야코브 논문 데이터를 출처가 모호하게 인용했다.
IPCC 보고서는 인도 학자의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옮겼다. 내부 검토과정에서 문제점이 지적됐으나 수정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도 출신인 파차우리 IPCC 의장에게 의혹이 쏠린다. 그는 인도 에너지자원연구소장을 겸하고 있고, 이 연구소는 유럽연합(EU)과 미 카네기 재단에서 수십억 원의 빙하 연구비를 받았다. 유럽연합 등은 이산화탄소 거래이권을 노리고 엉터리 연구를 지원한 의심을 받고 있다.
기후게이트 또는'빙하게이트'논란은 세계 보건학계와 국제기구 등이 신종플루 유행 위험을 과장했다는 의혹과 더불어 과학자의 도덕적 책임을 새삼 부각시켰다. 줄기세포 연구, MMR 백신 논쟁 등에 이어 엄밀한 검증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예일대 포럼이 완곡하게 지적한 언론의 책임을 말 그대로 사활적, 죽고 사는 문제라고 일깨우는 경고가 더욱 가깝게 들린다. 과학과 대중을 잇는 것을 업으로 삼는 언론이 스스로 사실을 검증하고 진실을 찾는 노력 없이 꼭두각시 노릇에 머문다면 갈수록 설 곳이 없다는 경고이다.
객관적 분석이 생존의 요체
언론에 지나친 요구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뉴스와 정보와 지식의 대중화, 보편화 추세 속에 언론이 살아 남는 길은 뉴스 발굴과 전달이 아니라, 사실과 진실을 가늠하는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 등 전통적 언론의 위기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그게 전문가와 네티즌 사이에서 생존하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강조한다.
그 생존을 위한 지혜의 요체는 정치와 이념 등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 사실을 엄밀하게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언론이 과학적 논란을 비롯한 정치사회적 힘겨루기를 맹목적으로 중계하거나 추종하는 행태를'허드렛 일꾼'에 비유한 외국학자도 있다. 전문기술이나 지식없이 그저 삽질만 하는 막노동 꾼과 같다는 조롱이다. 지금 우리는 객관적 분별력을 생업 수단
으로 삼고 있는지 함께 돌아볼 때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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