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굵고 뾰족한 가시가 촘촘한 엄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는 정이 가지 않는 나무였다. 잎이 없는 빈 가지뿐인 겨울이어서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이름 그대로 '엄'한 표정을 가진, 접근하기 두려운 나무로 보였다. 음나무라고도 하고, 우리 마을에서는 엉개나무라 부르는 엄나무는 사람과 친한 나무다. 시골에는 지금도 집집마다 담장 밖에 엄나무가 서 있다.
옛사람들이 문 밖에 엄나무를 심은 것은 여러 가지 뜻이 있었다. 집에 들어오는 잡귀를 막고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엄나무가 주는 먹는 즐거움도 있는데 봄이 오면 새잎을 데쳐서 나물반찬을 해먹는다. 쌉쌀한 맛이 겨우내 잃어버린 입맛을 단숨에 찾아준다. 두릅나무도 마찬가지다. 엄나무처럼 몸에 억센 가시가 돋아나 있다. 그런 두릅나무에서 향긋하고 푸른 두릅나물을 얻는다.
오갈피나무도 그렇다. 몸에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있고 뿌리껍질이 사람에게 좋은 약이 된다. 몸에 가시를 가진 엄나무, 두릅나무, 오갈피나무가 가르쳐준다. 무릇 가시를 가진 나무는 사람의 약이 되고 반찬이 된다고. 삶에도 가시가 있으니 콕콕 찌르는 아픔을 약처럼 알고 참고 견디라고. 영하의 찬바람 속에 문 밖의 엄나무가 가시를 꼿꼿하게 세우고 당당하게 서 있다. 자신에게 엄격한 자세로 서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봄이든 희망이든 가장 먼저 찾아올 것이라고.
시인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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