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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개도국의 마음을 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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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개도국의 마음을 얻자

입력
2010.02.0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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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 전 러시아 극동지방에서의 일이다. 러시아 교수들과 저녁 무렵 시내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턱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한 사내가 후다닥 달아나고 있었다. 생면부지 사람이 묻지마 발차기를 날린 것이다. 미안해하는 러시아 교수들이 조심스레 설명한 이유는 이렇다. 극동러시아 사람들이 싫어하는 두 부류는 중국인과 미국인인데, 나는 영어하는 중국인으로 보여 그 교집합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도와주면서 반감 사는 나라들

미국은 냉전기의 경쟁자인데 지금은 혼자 잘 나가고 있으니 좀 시기심이 발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 중국인들은 국경을 넘어 이주하여 밑바닥 상권을 장악해 가고 있어 중ㆍ하층 러시아인의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라는 설명이었다.

작년 아프리카 남단의 작은 국가 나미비아를 방문했을 때이다. 시내 한복판에서 지나치는 현지인들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지 상공인들을 만나 그 이유를 물으니 내가 중국인처럼 보이기 때문이란다. 중국 건설업체가 저가 입찰로 정부발주 공사를 휩쓸고 있어 현지인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입사조건으로 중국어를 요구하므로 나미비아인은 채용되지 못하며 대부분이 중국에서 건너온다고 했다.

그들은 중국의 아프리카 지원도 결국 중국이 아프리카를 잠식하는 수단이므로 별로 반갑지 않다고까지 했다. 한편 주지하다시피 ASEAN에서 중국 화교가 차지하는 경제적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중국인을 겨냥한 폭동까지 있었다.

중국은 아프리카, ASEAN에 막대한 물량공세를 퍼붓고 있다. 정상외교도 두드러진다. 이를 통해 소위 G2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 자원 확보 등 경제적 이득을 노리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의 개도국 지도층에 대한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 나라 국민들은 중국에 등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개도국 민주주의도 성숙해 가고 있는데 현지인의 마음을 사지 못하는 대외원조는 지속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중국에 비해 훨씬 작은 경제규모의 우리는 어떤 전략으로 임해야 할까?

중국이나 선진국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 두 가지가 우리에게 있다. 첫째, 한국은 제조업 등 전통산업에 필요한 기술·기능을 가지고 있다. 선진국은 이미 구조조정이 끝나, 개도국이 원하는 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중국은 아직도 그러한 산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이를 개도국에 전수할 입장이 아니다. 한국은 아직도 전통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외국에 전수하며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물론 국제기능올림픽 통산 15회 우승에 빛나는 실력도 큰 장점이다.

둘째, 한국은 국가운영 지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후진국에서 출발하여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 문턱까지 진출하였다. 정치적으로도 개발독재로부터 평화로운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꽃 피웠다. 또한 행정적으로도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정부로부터 효율적이고 투명한 정부를 만들어 냈다. 2차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이와 같이 경제, 정치, 행정적으로 성공을 이룬 나라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대한민국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경험을 개도국에 전수해야 한다. 이것은 중국이나 선진국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 한국 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과 한국생산성본부의 주관으로 18일 동안 인도네시아의 각 정부 부처를 돌며 그 나라의 정부개혁 과제를 파악하고 개선방향을 제시하는 활동을 펼쳤다. 향후의 대외원조는 이와 같이 우리의 장점을 살리는 지식과 기술ㆍ기능 전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긴 안목으로 성공 경험 전수를

대외원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인지 눈앞의 단기적 이득을 챙기려는 조급함이 보여 아쉽다.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성공한 나라로서 후발 개도국의 성공을 지원한다는 성숙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개도국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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