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 중심에 위치한 스쿠파 거리는 유명한 패션 전문상점들이 즐비하고 운치 있는 카페가 많아 평일에도 밤늦게까지 관광객과 시민들로 발디딜틈없이 붐빈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 한파의 직격탄을 맞은 요즘 거리는 그야말로 썰렁하기 그지 없다.
영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일 주말 판에서 "재정위기가 결국 아테네에서 가장 번잡한 거리의 경기마저 망가뜨리고 있다"며 하루가 다르게 우울해지는 그리스 경제의 분위기를 전했다. 노점상 이아니스씨는 "잡지는 물론이고 하다 못해 스위스 초콜릿과 음료수를 사려는 사람들마저 급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바를 운영하는 스텔리오스씨도 "예전엔 평일 저녁에도 몰려와 돈을 펑펑 쓰던 손님이 많았는데 이젠 전혀 그렇지 않다"며 "점점 경기가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미 지난 해부터 재정난이 시작된 그리스의 서민경제는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총리가 지난주 공공분야의 임금을 동결하고 각종 세금을 올린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더욱 휘청거리고 있다. 스쿠파 거리에선 2008년 말 높은 청년실업률로 촉발됐던 대규모 폭동 사태의 재연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선물가게 주인인 마리나씨는 "2008년 폭동 때 공격을 받은 이후 아직 복구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월에는 가겟세를 낼 만큼의 수입도 올리지 못해 가게를 정리하려고 짐을 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TV 뉴스를 보면 재앙이 문 앞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고 불안해 했다. FT는 "스쿠파 거리에선 요즘 가게를 내놓는다는 붉은색 문구를 붙인 상점들이 쉽게 눈에 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겉모습과는 달리 아직 그리스인들에겐 낙관적인 전망이 남아있는 듯하다. 또한 현재의 재정위기가 지난해 집권한 사회당을 향한 원망으로 확대되지 않고 있어 정치불안에 대한 위기감은 감돌지 않는다. 그리스 민영 라디오채널인 스카이라디오가 최근 재정위기와 관련,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4%가 "정부부채가 너무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62%는 "정부가 위기를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답했으며 "정부의 위기관리 프로그램을 신뢰한다"는 반응은 60%에 달할 정도였다. 그리스 국민들이 현 정권의 단기적인 실책을 경제난의 직접 원인으로 꼽기 보다는 그리스 경제전반에 걸친 해묵은 시스템의 오류가 지금의 경제난을 초래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테네 시민들은 10일 예정된 공공 노조연맹의 파업에 대해 공감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이다. 부패로 썩은 공무원 조직이 재정적자를 불러왔다는 반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해설가인 타키스 미차스씨는 "공공영역의 근로자들은 스스로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임금동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들은 화가 나서 파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FT에 말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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