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풍랑을 헤쳐가는 정운찬 국무총리의 운신이 위태위태하다. 야권은 정 총리의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 중 공격적인 언사를 문제 삼아 자진사퇴 요구와 해임건의안 카드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의석분포 상 야권만의 해임건의안 제출은 파괴력이 약하지만 한나라당 내 친박계가 가세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최근 친박계의 기류를 보면 전혀 가능성 없는 얘기가 아니다. 정 총리가 이 고비를 어찌 넘을지 궁금하다.
야권의 사퇴요구와 해임 건의안 으름장은 여당의 주장대로 '상투적 정치공세'이자 이명박 정부 흔들기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정 총리가 부적절한 언행과 말 실수로 자초한 면도 상당하다. '보스의 뜻만 따르는 정치인' 발언만 해도 그렇다.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자기 정치집단의 보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져 안타깝다"고 한 것은 의원들을 보스의 하수인쯤으로 여기는 어법이다. 의원 비하ㆍ의회 무시 발언으로 비쳤으니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당연했다.
정 총리는 감정적이고 인신공격적인 질문으로 나오니 답변도 격해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과거 정치인 출신 총리들이 의원들과 거친 말싸움을 벌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들은 구태정치의 때가 묻지 않은 학자 출신의 정 총리에게는 다른 모습을 기대했다. 그런데 오히려 한 술 더 뜨니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이용삼 의원 조문 실언도 이해할 수 있는 실수이지만, 성의 없어 보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일까지 겹치니 신뢰는 떨어지고 반감은 커진다.
국무총리는 대통령 보좌와 함께, 정치사회적 통합과 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막중하다. 정 총리가 태생적 임무인 세종시 문제에 민감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거듭 정제되지 않은 말과 주장으로 갈등과 대립을 키우는 것은 자신은 물론 국정 운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쇳소리가 아니라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정 총리는 자신의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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