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내심, 돈, 그리고 운. 면역학자 폴 얼리히는 과학자가 성공하기 위해 이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어로는 이 단어들이 모두 G로 시작하니 성공하는 과학자가 되기 위한 '4G'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하나 더 붙여 '학벌'이 필요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학벌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술보다 중요한 게 학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에. 사실 미국이나 유럽 과학계에서도 '학벌'은 성공에 유리한 요소로 통한다. 적어도 유명한 연구실과 교수 밑에서 수학했다면 처음 논문을 낼 때나 직장을 잡을 때 유리하다.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끼리끼리 봐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현대의 서양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래서, 우정에 관하여 한 번 생각해 본다. 우정을 특히 강조하는 사회는 사실 전근대적인 면이 없지 않다. 사람을 뽑을 때 과거의 경력을 완전히 가리고 무한 경쟁하여 가장 나은 사람을 뽑기보다 은근히 학연과 연고에 매여 잘 아는 친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우정'은 때로 '사회적 정의'보다 강하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낙담하게 됨은 물론이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MRC, 분자생물학 연구소 로비에는 이 연구소를 설립한 막스 페루츠의 명언이 현판으로 걸려 있다. "과학에서는 진리가 항상 승리한다." 페루츠의 이 말은 그 자체가 진실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그의 강한 의지이기도 하다. 연고 때문에 희생되는 건 한 개인의 성공만이 아니고 실은 과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는 인간들이 묶어 놓은 인연에 지배되지 않기 때문에 과학 연구의 결과는 당연히 연고와 우정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뛰어난 기술, 인내심, 연구비, 적당한 운이 따라준다면 누구라도 세계적 업적을 낼 수 있다. 아무 연고가 없었다면 첫 연구 성과물이 게재되고 인정을 받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학술지에 출간된 후 시간이 흘러 옳다는 것이 동료 과학자들에 의해 인정되고 나면,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고로부터 쉽게 해방되기 마련이다. 세계적 과학자일수록 저 사람의 연구 성과가 나의 과학에 도움이 되느냐를 냉정하게 따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이 그나마 '과학계'가 진보적인 이유일 게다.
2006년 새해, 서울대 홈페이지에 올릴 신년 연하장을 써 달라는 홍보부의 부탁을 받고 "…가시밭길이라도 의미 있는 길을 가라"고 쓴 일이 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들과 고교를 졸업하고 입학하는 새내기들에게 안정적인 직업만 선호하지 말고 도전적이고 의미 있는 평생의 일을 택하라고 조언한 글이었는데, 일간지에 기사가 나고 난 후 정작 반응은 다른 곳에서 더 많이 왔다. 주로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교도소의 수인들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그 편지들 속에서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매어 있는 우리 사회 문화에 치인 사람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를 읽었다.
그래서 지금 과학을 전공하고 졸업하는 학사들과 박사들을 위해 쓴다. 과학에서 우정이 차지하는 자리는 그리 크지 않다. 오직, 진리를 탐구하는 일만이 있을 뿐이다. 조금 힘들게 시작할 수는 있어도 열정과 능력이 뒷받침된다면 언젠가 빛을 볼 수 있다. 우정은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운이라면 하늘이 줘야 하겠지만,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던가. 과학에서는, 도전하는 자와 그가 밝히는 진리가 항상 승리한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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