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과연 통할까?'
지난해 1월 상부로부터 '선명한 화질의 3차원(3D) TV 패널을 만들어 달라'(프로젝트명: '액티브 셔터 글래스')는 미션을 받아 들 당시, 김선기(50) 삼성전자 개발2팀 수석연구원의 머리 속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찼다.
고해상도 액정화면(LCD) 구동기술개발 분야에선 '마스터(2009년10월)란 칭호를 얻을 만큼, 삼성전자 내에서도 달인으로 통하는 그였지만 3D TV의 상용화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100% 자신할 수 없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연구ㆍ개발(R&D) 수석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임원 성장 코스인 '관리자' 트랙과 조직 관리 업무를 빼고 R&D에만 열중할 수 있게 배려한 '마스터'의 두 갈래로 나눠 진로를 결정하게 했는데, 김 수석은 이 제도의 1기 마스터로 뽑힌 인물이다.
관리자의 길을 포기하고, 장인의 길을 선택한 셈이다. '명장'으로 통하는 삼성전자의 1기 마스터엔 김 수석을 포함해 단 7명만이 선정됐을 만큼, 엄격한 심사 기준이 적용됐다.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았고,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아 보였어요. 사실, (미션을 받았던) 그 때에는 '3D TV가 진짜 일반 가정내 안방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3D TV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엔 시기상조였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스터'로서 꿈틀대는 원초적 본능을 외면할 순 없었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전략 제품으로 지목한 '3D TV'를 직접 그려내고 싶은 도전의식도 생겼다.
3D TV가 히트상품에 오른 '발광다이오드'(LED) TV에 이어 삼성전자의 주력 모델로 지목됐던 탓에 부담감도 컸지만, 그 만큼 도전가치는 충분했다. 그의 승부욕은 이미 발동한 상태였다.
본격적인 개발(2009년3월)에 착수하자, 예상대로 고난은 시작됐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영상을 구현하기 위해선 3D 기술이 적용된 240㎐ 초고화질(풀HD)급 LCD 패널 생산이 필요했지만, 이 제품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검증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이었던 탓에 3D TV용 240㎐ 풀HD급 LCD 패널에 들어가는 부품은 전무했던 것이다. 앞서, 3D TV 기술이 적용된 120㎐ 풀HD급 LCD 패널은 출시됐지만 기술적인 한계로 선명하지 못한 화면을 제공하면서 주목 받지 못했다.
"협력사를 다 뒤져도, 우리가 원하는 부품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3D TV용 120㎐ LCD 패널에 사용됐던 부품을 임의로 두 개씩 붙여가면서 연구를 했어요." 그는 부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지난 봄날의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시련은 계속됐다. 15명으로 구성된 같은 팀 내에서도 합의점을 찾기조차 어려웠다. 연구원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3D TV 초안은 아이디어 진화 과정에서만 수십 번도 넘게 바뀌었다. 밤샘 끝장 토론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팀원들의 프로의식은 한 곳으로 모아졌고, 지난해 10월 마침내 3D 기술을 적용한 240㎐ 풀HD급 LCD 패널은 완성됐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지난해 10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전문 행사인 'FPD 인터내셔널'에서 처음 선보이며 주목을 끌었던 이 패널은 지난 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0' 가전전시회를 통해 3D TV 완제품으로 공개되면서 극찬을 받았다.
때마침 3D 입체영화로 등장한 '아바타'의 흥행 돌풍으로 3D TV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컸고, 3D TV 시대의 개막도 더욱 가까워졌다.
덕분에 그는 요즘 전 세계 TV 세트업체로부터 제품 생산과 관련된 '러브콜'을 받느라 정신이 없지만 그의 생각은 이미 새로운 제품 구상에 들어갔다.
"이제 또 다른 씨앗을 뿌려야죠. 그게 마스터가 가야 할 길이 아니겠어요?"
탕정(아산)=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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