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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약한 것들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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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약한 것들의 아픔

입력
2010.02.07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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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든 고양이든 이구아나든 애완동물이란 걸 키워본 일이 없다. 어릴 때 개에 물린 기억 때문인지, 동물이라면 왠지 겁이 나고 서먹하다. 서먹할 뿐 아니라 미안하고 안타깝다. 저희들끼리 살아야 편하고 좋을 텐데 사람 욕심 때문에 사람 사는 세상에서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1만 년 전부터 사람 곁에서 살아온 개나 돼지를 새삼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과 동물이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자세로 사는 게 좋지 않나 싶다.

그러나 꿈이다. 불가근불가원은 고사하고 동물의 생존 자체가 위험한 세상이다. 금붕어 한 마리 키운 적 없는 나지만 요즘은 동물을 위해 뭔가 해야 할 것만 같다. 끔찍한 소식들이 자꾸 들려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 햄스터를 믹서에 넣고 돌리는 동영상이 떠돌아 말을 잃게 하더니, 이번엔 개 여덟 마리에게 칼날을 먹이고 라이터로 얼굴을 지지고 펜치, 커팅플라이어로 발톱을 뽑은 남자가 나타났다. 이러고도 사람에게 희망이 있을까.

동물 학대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고양이에게 대못을 박는가 하면 산 채로 불태우거나 목매달아 죽이기까지 한다. 그런 짓을 하고 치른 죗값은 최대 벌금 50만 원이 고작이다. 개 여덟 마리를 고문한 남자 역시 벌금 50만 원이 선고됐다. 소식을 들은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하고 동물 학대범 처벌을 강화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문제가 해결될지는 알 수 없다.

고양이를 죽이고 동영상을 올린 청소년은 경찰 조사에서 "죄가 되는 줄 몰랐다, 재미로 그랬다"고 말했다. 아마 그가 하고픈 말은, 그것이 형사처벌을 받는 범죄가 될 줄 몰랐다는 것이었으리라. 그게 아니라 만약 말 그대로 정말 죄가 되는 줄 몰랐다면, "재미로"동물을 죽이고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몰랐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섭고 슬픈 일이다.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도리인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런던과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경거리는 스무 살 난 아프리카 여인 사키 바트만이었다. 유럽인들은 그녀를 발가벗겨 인종 전시대에 세우고 이리저리 관찰하고 만지며 신기해했다. 전시회가 시들해지자 그녀는 서커스단으로 팔려갔고, 유럽으로 건너온 지 불과 5년 만에 사창가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죽음도 그녀에게 안식을 주지는 못했다. 그녀의 시신은 프랑스 해부학자에게 양도되었고, 적출된 뇌와 생식기는 2002년 고국 남아공으로 돌아올 때까지 186년 동안 포름알데히드에 담긴 채 프랑스 인류학박물관에 소장되었다.

개를 고문하고 고양이를 죽인 사람들이나, 사키 바트만을 구경하고 시신을 박제한 사람들이나 모두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 특별히 잔인한 인간이 아니라 주위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 거기에 인간의 비극이 있다. 나와 같은 존재에게는 한없이 따스하지만 나와 다르다고 여겨지면 한없이 가혹해지는 인간 때문에, 동물도 식물도 산도 강도, 그리고 사람마저 위태롭다.

동물을 보호하자, 생태를 보존하자고 하면 사람부터 살고 보자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가장 약한 것들을 챙기고 그 아픔을 상상하는 세상에서 사람은 얼마나 편안할 것이며, 그 마음은 얼마나 평화로울 것인가. 부디 새해에는 짐승을 괴롭히던 마음에도 이런 평화가 찾아오기를, 그리하여 모두가 편안하기를.

김이경 소설가ㆍ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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