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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박근혜의 직관, 또는 셈법

입력
2010.02.07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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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한나라당 친이ㆍ친박 계열의 대결이 뜨겁다. 무대를 국회로 옮겨 노골적으로 맞붙은 양측은 감정싸움 조짐까지 보여 봉합 가능성조차 흐려지고 있다. 사실상 분당 상태인 여당의 균열 앞에서 수정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정부의 의지는 물론이고, 야당의 필사적 반대 의사까지 빛을 잃었다.

정치 전면에 나서길 꺼리던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지휘하고 있는 저지선은 난공불락처럼 보인다. 정몽준 대표와 정운찬 총리가 잇따라 비난 공세에 나섰지만 받아 든 것은 쌀쌀한 반응뿐이다.

박 전 대표의 반대론이 더욱 단단해지는 것과 관련, 측근들은 어떤 정치적 계산이나 이해타산과도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정치 경험과 원칙에 비추어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신의를 좇으려는 정치행위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속으로야 설마 하지만, 내놓고 반론을 펴기도 힘들다.

신의가 으뜸 덕목인 것은 맞지만

동양 전통의 정치사상에서 신(信)은 인의예지(仁義禮智)보다 앞서는 중심 가치이고, 특히 정치 지도자가 추구해야 할 으뜸 덕목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옛 성현들은 믿음, 즉 신의야말로 어질고, 바르고, 겸허하고, 지혜로운 것을 모두 뛰어넘고, 합리성과 효율성까지도 후 순위로 밀어낸다고 보았다. 머리 속을 살필 수 없는 한 박 전 대표가 그런 전통사상에 기울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옛사람들이 신의를 무겁게 여긴 이유가 단순히 인격적 성숙을 위해서라는 데 그치지 않았음을 확인해 두고 싶다. 신의가 있어야만 비로소 인의예지가 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쓰임새를 분명히 고려했고, 특히 정치 지도자의 신의는 치세라는 실용적 목표를 감안했다. 인치(仁治)나 덕치(德治)를 중시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부국강병의 수단으로 법치(法治)를 앞세운 사람들도 신의의 효용성을 으뜸으로 여겼다. 신의라는 가치도 완전히 현실적 쓰임새와 동떨어진 것일 수 없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가 강조하는 신의의 뒷모습을 엿볼 만하다.

그것이 정치경험에서 나온 직관의 산물인지, 정교한 분석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박 전 대표의 선택은 정치적 이해와 강하게 이어져 있다. 대전을 포함한 충청 지역의 표심(票心)은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 이래 한 번도 어긋남이 없었던 '대선 함수'의 중요한 독립변수다.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충청지역에서 김대중 후보보다 20만 표 이상을 더 얻었다. 15대 대선에서는 'DJP 연합'에 힘입은 김대중 후보의 충청지역 득표가 이회창 후보보다 40만 표 이상 많았다. 16대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보다 25만 표 이상을 앞섰다. 상대 후보의 득표력이 크게 모자랐던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33만 표 이상 앞섰다.

충청에서 승리한 후보는 모두 집권에 성공했다. 영ㆍ호남이 변수가 될 수 없는 정치지형이 근본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한 충청의 승리는 대선 승리로 직결된다. '대세론'을 업고서도 이회창 후보는 충청에서 패배, 연달아 고배를 든 바 있다. 압도적 선두인 현재의 지지율에 안도할 수 없고, 충청 표심 이탈은 최우선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본능적 반응이 직관이나 표 계산을 자극하지 않았을 리 없다. 충청의 박 전 대표 지지율이 상승하고, 덩달아 호남 지지율도 '마의 벽'이라던 10%선을 넘어섰다.

'대선 함수'독립 변수인 충청표심

당연히 반작용은 있다. 충청 표심과 함께 '대선 함수'의 양대 독립 변수인 수도권 표심이 심상찮다. 압도적 선두는 그대로지만 20%대로 떨어졌다. 14~17대 대선 승자들의 수도권 득표율 36.47(YS)~52.03(MB)%, 평균 45.34%와 아득하다. 그러나 수도권 유권자 고유의 '정체성 확립' 여부가 관건이지만 결국 수도권 표심은 최종 비교우위 판단에 따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험칙과 선거셈법이 박 전 대표의 자세 변화 가능성 자체를 단단히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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