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미디어아트는 차가운 기술을 통해 따스한 감성을 만들어 내는 재주를 가졌다. 미디어아트 전문 전시장을 비롯해 주요 미술관, 화랑에서 눈길을 끄는 미디어아트 전시가 마침 같은 시기에 열리고 있다.
추억의 재생, 오용석 '클래식'전
갤러리현대가 최근 서울 사간동 16번지의 2층 주택건물을 개조해 오픈한 '16번지'는 젊고 실험적인 작업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개관전으로 열리고 있는 미디어아트 작가 오용석(34)씨의 개인전에서는 특정한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작업을 확장시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장면 속에 담아낸 영상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정적인 사진과 동적인 영상, 과거와 현재, 실재와 허구가 조합돼 독특한 감성으로 다가온다.
'클래식 No.1978'은 1978년 작가가 어린 시절 이웃집에서 찍은 사진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이 당시의 희미한 기억을 살려 구식 텔레비전과 책상 등이 놓인 사진 바깥의 공간을 재현했다. 실제 사진에다 작가가 구한 소품으로 연출한 사진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하나의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 침대 위에 있는 쌍둥이 소녀의 사진을 소재로 한 '소현소희'는 같은 공간에 대한 쌍둥이의 서로 다른 기억을 번갈아 보여준다.
'클래식 No.1915'는 화가 에곤 실레가 거울 앞에서 찍은 사진에다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였다. 정지된 인물 주위로 천천히 흔들리는 전등과 조금씩 움직이는 포스터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28일까지. (02)722-3503
동화의 체험, '행복한 왕자'전
미디어아트 전문 전시공간인 서울 서린동 아트센터나비에서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를 만날 수 있다. 익숙한 이야기, 그리고 일상과 자연적 소재를 통해 미디어아트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아기자기한 전시다.
무대미술가 이영란씨가 산에서 주운 나뭇가지와 종이로 '행복한 왕자' 속 이미지들을 만들었고, 그 위에 미디어 아티스트 한계륜씨가 디지털 영상을 입혀 행복과 나눔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장에서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동화를 읽는 연극배우 서주희씨의 나직한 목소리가 함께 흘러나온다. 모래 위에 놓인 한지 피라미드를 스크린 삼아 사막과 강, 숲의 이미지를 빛으로 일렁이게 한 작품은 제비가 꿈꾸던 남쪽나라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왕관 주위로 종이로 만든 눈, 그리고 빛으로 만든 눈이 함께 쏟아져 내리는 작품에는 '선물'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왕자 얼굴을 한 평면의 종이 형상 위에서는 보석 눈만이 디지털의 힘으로 반짝이고 있다.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자연스레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26일까지. 8일 오후 6시에는 전시장을 무대 삼은 퍼포먼스도 열린다. (02)2121-0930
백남준, 빌 비올라, 미야지마 다츠오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백남준, 빌 비올라, 요나스 달버그 등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기존의 기획전시 공간인 '블랙박스'를 미디어아트 전시 공간으로 꾸미고 현대인의 내면과 삶을 관조하는 작품들을 모았다.
빌 비올라의 '베일'은 어두운 공간 속에 드리운 여러 겹의 베일 위에 인간과 자연의 영상을 비춰 진지한 명상을 이끈다. 신과 인간 사이에 드리운 수많은 베일을 거쳐 비로소 인간이 태어난다는 이슬람교 수피즘을 반영한 작품이다. yBa 작가인 샘 테일러 우드의 '줄'은 차이코프스키 현악 4중주를 연주하는 연주자들과 그 위의 줄에 매달려 춤추는 발레리노를 통해 교감과 단절의 양상을 보여준다. 전자시계 같이 LED 숫자들이 명멸하는 미야지마 다츠오의 작품은 시간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개의 모니터 위에 달걀과 여성의 이미지를 포개놓은 백남준의 '알', 뉴욕현대미술관이 구입한 정연두의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 김수자의 '바늘여인'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전시는 6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관람료는 상설전을 포함해 1만원. (02)2014-6901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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