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가루가 부옇게 이는데도 아이티 청년 프랑시스(25)의 망치질은 멈추지 않았다. 건물 잔해를 부수고 그 밑을 뒤지는 몸놀림은 강렬한 햇살만큼이나 필사적이었다.
아직도 무수한 시신이 묻혀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 속에서 프랑시스가 찾고 있는 것은 가족이나 친구들의 시신이 아니었다. 10여분의 망치질 끝에 그가 건져낸 것은 수 미터 길이의 철근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철근을 파는 것밖에 없어요." 폐허를 증거하는 앙상한 철근 가닥이 그에겐 유일한 삶의 동아줄이었다.
3일(한국시간 4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대통령 궁에서 차로 10분 남짓 떨어진 루에 데즈 미라클즈 거리. 거의 모든 건물들이 폭삭 내려앉은 하얀 잿더미 위에 50~60명의 아이티인들이 몰려 들어 철근을 캐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손엔 제각각 곡괭이와 망치 등을 들었고 먼지를 피하기 위해 흰 비닐봉지를 쓴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폐허 속에서도 생존 투쟁은 치열했다. 한 청년이 잔해 속에서 철근 가닥을 거의 뽑아내려 하자 주위 몇몇이 서로 손을 내밀며 달려들었다. 머리와 어깨가 부딪히며 뒤엉켰다. 청년은 넘어진 순간에도 움켜잡은 철근을 놓치지 않았다. 신경전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누군가는 자신이 확보한 철근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핏대를 올렸고 몇몇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위세를 과시했다.
철근을 찾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시신들이 깔려 있는 콘크리트 더미 위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로 웃고 떠들었다. 프랑시스는 "작업을 하다 보면 콘크리트 잔해 속에 시신들이 자주 보이지만, 철근을 건져내는 게 더 급하다"고 했다. 지금 그들의 눈엔 생명도 존엄도 그 무엇도 아닌, 철근 밖엔 보이지 않는 듯했다. 프랑시스는 '희망이 뭐냐'고 묻자 단호히 "일자리"라고 말했다.
대통령궁, 국회의사당 등 거의 모든 것이 무너진 도심에서 온전하게 남은 건물은 제프라드 광장 옆 4층짜리 중앙은행이었다. 지진이 나기 얼마 전 지어진 신축건물이라 다른 건물들이 무너질 때 이곳만은 온전했다. 경비원 언 주라(43)씨는 "많은 친척들이 죽었지만, 이곳에서 같이 일하던 내 친구들만은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권총을 찬 채 은행 앞을 지키고 있었다. 지진을 버틴 건물 덕에 목숨도 건지고, 일자리도 잃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혼자 으리으리하게 서 있는 중앙은행 건물은 기괴한 느낌마저 들었다.
시내 중심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공터엔 수백 명의 이재민들이 텐트를 치며 살고 있었다. 곳곳에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고 악취가 진동해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이곳에서 만난 에스텐실리스트(44ㆍ여)씨는 "지금 여기에는 음식과 물, 담요 등 모든 것이 부족하다.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언덕 위에선 파란 연들이 하늘에 날고 있었다. 아이들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나무와 비닐을 이용해 연을 만들어 날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현지 안내인이 좋은 곳을 보여주겠다며 이끌었다. 차로 20분을 달려 간 곳은 댈라스 55거리. 한 가게에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청년 30여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누군가는 술에 취해 비틀거렸다. 폐허가 된 도심의 이재민들은 물이 없어 무너진 병원에서 꺼내온 수액을 마시고, 20분 떨어진 다른 곳에서는 에어컨 바람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낯선 풍경이 공존하는 곳. 아이티에는 죽음과 삶,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글ㆍ사진=김현우 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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