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지음 / 뿔 발행ㆍ308쪽ㆍ1만2,000원
중견 소설가 임영태(52)씨가 역사소설 <호생관 최북> 이후 2년여 만에 발표한 장편이다. 주인공은 마흔한 살의 자서전 대필 작가.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귀농했던 그는 아내의 건강이 나빠지자 도로 상경, 마포의 반지하 주택을 거주지 겸 사무실로 삼고 대필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아내는 결국 세상을 뜨고, 이후 주인공의 눈에는 죽은자의 유령이 보이기 시작한다. 호생관>
아내를 잃은 충격 속에 살아가는 그에게 어느날 비범한 풍모의 60대 남자 장자익이 찾아와 자기 삶을 소설로 써달라며 계약금을 건넨다. 하지만 얼마 후 장자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빈소를 찾은 그는 장자익의 딸을 통해 방랑의 연속이었던 장자익의 삶을 알게 되고, 이를 계기로 열등감에 휩싸여 살면서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냉담했던 제 삶을 되돌아본다. 그런 와중에 장자익과 아내의 유령이 그를 찾아온다.
다양한 각도에서 읽히는 소설이다. 중년 남자가 지인들의 죽음을 계기로 인생을 되돌아보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성장소설이면서, 대필 작가인 주인공에게 글을 의뢰하는 인간 군상을 통해 세태를 들추는 풍속소설이기도 하다. 교인들을 끌어들여 사업을 일으킬 작정으로 신앙 간증 원고를 부탁하는 사람, 자수성가한 삶을 뽐내고 원한 맺힌 이들에게 복수하려는 심산으로 자서전을 부탁하는 의사 등은 현대인의 욕망을 세세하게 드러낸다.
또한 이 소설은 작가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소설가 소설'이기도 하다. "말할 수 있는 것만 쓴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쓰지 않는다" "한 캐릭터의 존재론적 운명을 복원하는 일" 같은 주인공의 발언은 작가 임씨가 보는 글 쓰는 자의 윤리를 나타낸다. 몇 해 전부터 생계를 위해 대필 일을 시작했다는 작가 임씨의 실제 경험이 다분히 반영돼 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문장이다. 섬세한 관찰자가 무심히 던지는 말투를 닮은 간결한 문체가 서사의 속도감을 더한다. 청량한 문장에서는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인물과 풍경의 본질에 닿으려는 심사숙고가 보인다. 주인공이 죽은 자와 부대끼며 산다는 비현실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작가 임씨는 현실과 환상을 자연스레 넘나들면서 몽환적이면서도 포근한, 독특한 질감의 서사를 빚어냈다. 올해 등단 18년이 된 임씨는 이 소설로 상금 1억원의 중앙장편문학상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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