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젤러 카터 지음ㆍ이영아 옮김 / 창비 발행ㆍ288쪽ㆍ1만원
열다섯 살 소녀 멜러니는 성숙해가는 제 몸을 샅샅이 훑어보며 엄마가 간직하고 있는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꺼내 입었다가 죄다 망가뜨리고 만다. 꾸중 들을 걱정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멜러니에게 느닷없이 여행 중이던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중산층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살다가 한 순간에 무일푼의 고아가 된 멜러니와 두 동생을 거둔 사람은 런던에서 장난감가게를 하는 필립 외삼촌이다. 멜러니가 부모님 결혼사진 속에서 무표정하고 깡마른 모습으로 기억하던 외삼촌은, 부인과 두 처남 위에 군림하는 비대한 폭군이 돼 있었다.
지난 세기 영미문학계의 가장 독창적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앤젤러 카터(1940~1992)가 1967년 발표한 장편 <매직 토이숍> 은 외삼촌의 폭압 밑에서 성장하는 멜러니의 수난기다. 매직>
고아 소녀가 억압적 공간에 갇혔다가 극적으로 구출된다는 동화적 서사에, 장난감이 인간을 공포스럽게 옥죄는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결합한 잔혹동화 풍의 이 소설은 18~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고딕소설의 전통에 동화, 초현실주의 시, 공상과학영화 등의 상상력을 결합하는 카터의 문학적 개성을 잘 보여준다. 그는 짧은 문장으로 팽팽한 서사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한편, 곳곳에 유머를 배치해 능란하게 독자들을 긴장시켰다 이완시켰다 한다.
필립이 꼭두각시 백조가 멜러니를 성폭행하는 내용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자, 멜러니에게 연정을 느낀 필립의 처남 핀이 백조를 부수고 그녀를 탈출시키면서 소설은 절정을 맞는다. 한 남성의 억압에 매였다가 결국 또다른 남성의 도움으로 구원받는 멜러니의 모습은 남성우월주의에 꼭두각시처럼 휘둘리는 여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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