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무죕니다.”
5일 서울중앙지법 302호 법정. 피고인 김철(71)씨는 재판장이 “무죄”를 선고하자 법정 천장을 향해 손을 번쩍 들고 만세 삼창을 외쳤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부르짖었다. 이어 재판장을 향해 엎드려 세 번 절하며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그리고는 흐느끼느라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김씨가 간첩 누명을 쓰게 된 것은 친구와 본처, 그리고 내연녀의 질투와 배신, 원망에서 비롯된 비극의 산물이었다. 김씨는 인천에서 모래채취사업을 하다 동갑내기 강모씨를 알게 됐고 이후 둘은 소주 한 잔 기울이며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가 됐다. 둘의 관계가 어긋난 것은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과의 중개무역업을 하던 김씨가 1988년 강씨를 미국의 집에 초청하면서부터다. 강씨는 부인에게 “남편이 동업자와 불륜관계에 있다”고 자주 얘기를 했고, 그러면서 김씨는 친구와 부인의 관계를 의심하게 됐다. 친구관계가 틀어지자 강씨는 한국에 돌아와 1989년 수사기관에 “김씨는 조총련 간부 지령을 받고 남한에 온 간첩”이라고 허위 제보를 했다. 또 김씨 부인을 꾀어 법정에서 허위 증언하게 했다. 강씨는 1982년부터 김씨와 내연의 관계에 있던 여성을 찾아가 “다른 여자에게 빠져 당신은 생각도 않는다”고 말하며 역시 이 사건에 공모하도록 만들었다.
서울중앙집법 형사합의6부(부장 박형남)는 이날 선고에 앞서 “김씨는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이성문제가 있었다. 이 사건은 당시 김씨의 부인과 내연녀, 친구가 등을 돌려 김씨를 간첩으로 내몬 사건이다”라며 “김씨의 행동에 따른 선입견과 편견에서 비롯돼 허위 사실을 만들어냈고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이 유린됐다. 마지막 보루라는 법원도 선입견을 못 깼고 인간의 이면을 보지 못했다. 역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7년간의 옥살이 이후 20여년간 전국을 떠돌며 지냈다는 김씨는 “출소 후 강씨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전처를 찾아가 따지고도 싶었지만 자식들이 눈에 밟혀 그러질 못했다”며 “오늘 아들과 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죄판결을 받아 좋다”고 말했다.
강아름 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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