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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21> 화담 서경덕의 시 '유물(有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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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21> 화담 서경덕의 시 '유물(有物)'

입력
2010.02.0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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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만물은 오고 또 와도 다 오지 못하니/ 다 왔는가 하고 보면 또 다시 오네/ 오고 또 오는 것은 시작 없는 데로부터 오는 것/ 묻노니 그대는 처음에 어디로부터 왔는가.(有物來來不盡來 來纔盡處又從來 來來本自來無始 爲問君初何所來)

존재하는 만물은 돌아가고 또 돌아가도 다 돌아가지 못하니/ 다 돌아갔는가 하고 보면 아직 다 돌아가지 않네/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끝까지 해도 돌아감은 끝나지 않는 것/ 묻노니 그대는 어디로 돌아갈 건가.(有物歸歸不盡歸 歸纔盡處未曾歸 歸歸到底歸無了 爲問君從何所歸)"(김학주ㆍ임종욱 역;<화담집(花潭集)> )

우리 역사에 두드러진 자연철학자 화담 서경덕(花潭徐敬德ㆍ1489-1546)은 <송도인물지> 에서 창강 김택영(金澤榮)이 '조선 인문의 본보기[人文之表]로 평가한 지성이다. 여기 보인 <유물> 이란 철리시(哲理詩)는 이 서화담이 송나라 성리학자 소옹(邵雍, 邵康節)처럼 시 읊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남긴 몇 편 시 가운데 한 편이다.

시의 첫 편은 단도직입으로 '만물의 근원'을 읊어, 오고 오고 또 올 생명의 흐름 속에 "그대[君]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 '시작 없는 데[無始]'를 묻고 있다. 생명의 바탕을 묻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편에서는 끝없이 가고 또 가서 끝이 없는 만물의 '돌아감[歸着]'을 읊으면서 사람의 죽살이와 우주의 이치를 모두 읊어냈다.

이렇게 그대[사람]의 오고 또 오는 '옴[來]'과 돌아가고 또 돌아가서 끝이 없는 '돌아감[歸]'의 원리는 그의 <귀신사생론> 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였다. 곧 "죽음과 삶 및 사람과 귀신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고 하였는데, 이것으로 충분히 설명된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죽음과 삶 및 사람과 귀신은 다만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다.

이렇게 오고 가며 살고 죽는 것이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변화 곧 기의 취산(聚散)일 뿐,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기일원론 사상이야말로 생명사상이다. 곧 모든 죽음이 바로 소멸이 아니라 돌아감[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음을 슬퍼함[挽人]> 이란 시에서는 "사람의 죽음은 구름이 생겼다 없어지는 이치"와 같다 하고, "제 집으로 돌아가듯 본래의 상태 곧 '큰 빔[太虛]'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장자(壯子)가 아내의 죽음에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했다는 고사의 깨달음을 이해할 만하다"고 했다.

"한이 없는 것을 태허(太虛)라 하고 시작이 없는 것을 기(氣)라 하는데, 허공은 곧 기인 것이다… 기의 근원은 그 처음이 하나[一]이다. 벌써 기라 한다면 '하나'는 곧 둘[二]을 품게 되며, 벌써 둘이 되었다면 이제는 열림과 닫힘[開闢]이 없을 수 없고, 낳음과 극복[生剋]이 없을 수 없다."(<理氣說> ). 이것이 화담의 이기론의 골자이고, 생극론(生剋論)의 요체이다. 이런 생명사상의 멀고 깊은 뜻을 명상하며, '나'여, 모든 온 것들과 함께 기로 돌아감이 어찌 자연이 아니랴?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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