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법원 판결에 대한 집권 보수진영의 당혹감이 과도한 사법부 공격으로 표출됐다. 반대세력을 응징하고 싶었던 정권과, 이들과 손뼉을 맞추고 있는 친정부 언론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는 그들의 반응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판결에 대한 냉정한 법리적 비판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인 색깔 공세가 난무했다. 문제의 판결들과는 별로 상관 없는 우리법연구회를 주요 공격목표로 삼은 것은 엉뚱하기까지 하다. 평소 거슬렸던 눈엣가시를 이 참에 뽑아내려는 의도로밖에 달리 읽히지 않는다. 비판이 공감을 얻으려면 타깃이 정확해야 하는데 번지수가 틀렸다.
법원 판결의 법리적 완결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사실관계 판단에서도 다툼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상식에 비추어 보면 판결은 재판부마다 다를 수 있고, 획일적 기계적 판결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하급심의 다양한 판단은 상급심으로 올라가서 통일된 논리로 정리될 것이다. 이미 수없이 지적됐지만, 이런 이유에서 심급(審級)제도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대법원 판결이라고 해서 만고불변이 아니고, 다수의견이 있는가 하면, 소수의견도 있다. 재판관의 생각이 다 다른데 같은 사안이라고 해서 항상 같은 판결이 나와야 한다는 것은 권력자의 입김에 따라 재판이 이뤄지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주장이다.
정권과 친정부 언론의 사법부 공격에서는 그 평범한 진리가 무시됐다. 법리나 사실관계에 대한 시시비비를 넘어 판사들의 성향과 경력에 비판의 초점이 맞춰졌다. 애초부터 법리나 사실관계는 문제가 아니었다. 입맛에 맞는 판결이냐, 아니냐가 문제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일련의 사태를 언론들은 '법-검 갈등'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말은 단편적 사실을 지칭할 뿐이다. 오히려 '판결에 불만을 품은 보수정권과 그 지지세력의 사법부 공격'이라고 하는 것이 본질에 가깝다. 검찰은 그 일선에서 정권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공격수였을 뿐이다.
현 정권은 반대세력과 경쟁하고 견제하는 것을 넘어, 응징하고 보복하는 것을 법치로 이해하는 듯하다. 다양성과 절차와 이견은 무시되고, 뜻이 안 맞으면 너무 쉽게 힘으로 밀어붙인다. 여차하면 검찰의 칼이 동원된다. 하지만 정권과 검찰은 법원에서 연전연패하고 있다. 미네르바, 정연주, PD수첩 등 검찰의 무리한 기소 논란이 일었던 사건들이 줄줄이 법원에서 무죄가 났거나 나고 있다. 2008년 12월 30일자 이 칼럼에서 나는 '임수빈 검사가 옳다'는 제목으로 검찰이 PD수첩을 기소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검찰 수뇌부의 기소 방침에 반발해 사퇴한 임수빈 검사의 판단이 옳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팀을 바꿔서까지 기소를 밀어붙였고, 1심 재판부는 예상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상급심에서 사실관계 판단이 일부 달라질지는 몰라도 무죄 결론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정연주 전 KBS사장 기소도 마찬가지다. 법원의 조정에 따라 합의한 사안을 두고 배임죄로 기소한 자체가 무리였다.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는지는 검찰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정권과 검찰은 반성은커녕 무죄가 날 때마다 법원에 화살을 돌리기 급급했다. 몇몇 여당 의원들의 발언에선 판사들을 모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순치시키고 튀는 판사들은 찍어내겠다는 위세마저 느껴진다. 이견이 드러나지 않는 일사불란한 사회가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민주적이지는 않다. 그나마 옛날처럼 판사들의 뒷조사까지는 하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김상철 사회부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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