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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중앙시장에 안양大 학생 8명 '민들레쉼터'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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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중앙시장에 안양大 학생 8명 '민들레쉼터' 창업

입력
2010.02.0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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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전국 두 번째 규모의 전통 시장인 경기 안양시 중앙시장. 시장 중심가인 중앙로에서 삼덕공원 방면으로 50여m쯤 걷자 밝은 노란색으로 산뜻하게 꾸며진 자그마한 점포가 눈에 들어왔다.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커다란 유리창에 환한 조명, 알록달록한 벽지….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모양새가 주변의 우중충한 점포들과는 사뭇 달랐다.

안양대 학생들이 창업한 민들레쉼터였다. 40~60대 중ㆍ장년층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이곳 전통 시장에 젊은이들을 끌어 들여 생생한 활기를 불어넣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젊은 공간이다.

이날은 쉼터가 처음 문을 여는 날. 안으로 들어가니 40㎡ 남짓한 공간에서 대학생 예닐곱 명이 쉼터 대표 김동욱(25ㆍ무역유통4)씨의 감독 하에 손님 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점포 정면에는 중앙시장 전체 약도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시장 어느 점포에서 어떤 물건을 판매하는지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한쪽에 마련된 컴퓨터에서는 'OO 상점, 오늘 오후 4~6시 야채 20% 할인 판매'라는 정보가 떴다. 시장상인회와 네트워크를 형성, 빠르고 정확하게 판매 정보를 교류하는 것이다.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 정보를 원하는 20, 30대 젊은 주부들을 공략하기 위한 아이템이다. 또 60대 이상 노인층을 위해 짐 들어 주기 및 길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휴대폰도 무료 충전해 준다. 앞으로는 인근 중ㆍ고교생들의 발길을 사로잡기 위해 입시 상담 서비스까지 할 예정이란다.

이 모든 정보 및 서비스 이용료는 무료다. 우리 가족 사진 자랑 게시판, 명화 감상, 아기자기한 소품 등 점포 내 곳곳에 마련된 눈요깃거리는 덤이다. 쉼터 식구들이 모두 발품을 팔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것들이다.

물론 무료 서비스만 하는 것은 아니다. 커피는 1,000원, 생과일주스는 1,500원에 판매한다. 전통 시장의 주 고객인 중ㆍ장년층을 공략하기 위해 오곡차 칡차 마즙 등 웰빙차도 마련했다. 모두 1,000~2,000원에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박두호(25)씨는 "전통 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의 소비성향을 분석해 보니 장만 본 뒤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소비자들이 딱 5분만 더 시장에 머무르게 하자는 데 초점을 맞춰 아이템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점포 제일 안쪽은 음식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자칭 타칭 쉐프(Chef) 문규상(25)씨가 전담하는 주방 공간이다. 쉼터에서 가장 비싼 메뉴인 민들레 가락국수 세트 주문이 들어 왔다. 능숙한 솜씨로 면을 삶아 내더니 멸치와 다시마 등으로 우린 국물을 부어 정확히 3분 만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락국수를 만들어 냈다.

다랑어포 가루를 솔솔 뿌려 주먹밥과 함께 접시에 담아 제공하고 3,500원을 받았다. 문씨는 "가락국수의 본고장인 일본식 우동의 조리법을 기본으로 해 민들레 가락국수 만의 고유한 맛을 만들어 냈다"며 "하지만 더 이상의 비법은 말해 줄 수 없다"고 웃었다.

할머니 어머니들의 공간에 20대 젊은이들이 감히 도전장을 낸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다. 고객 감소로 고민하던 중앙시장은 젊은 변화를 원했고, 결국 자매 결연 대학인 안양대에 SOS를 보냈다.

이에 김동욱씨 등 8명이 팀을 꾸려 전통 시장 도전에 나선 것. 사업 자금은 도와 시로부터 대학생 창업 지원 자금 2,000여만원을 대출해 마련했다. 이후 꼼꼼한 상권 조사와 고객 성향 조사, 문제점 분석 등을 거쳐 아이템을 선정했다. 또 창업 교육, 위생 교육 등 실무 교육을 거친 뒤 드디어 지난달 19일 시로부터 사업자등록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앙시장 상인회 이두천(60) 회장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쉽지 않을 일이었다. 권리금 보증금 한푼 없이 건물 점포를 1년간 1,000만원에 선뜻 내 줬던 것. 음식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각종 집기들도 헐값에 제공했다.

이 회장은 "주변 점포 시세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지만 학생들이 당찬 포부를 품고 시장을 바꿔 보겠다고 하기에 도와줬다"며 "한 달 전부터 가게 인테리어를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생동감이 감돌아 쉼터를 바라보는 상인들의 시선도 달라졌다"고 전했다.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떼었을 뿐인데도 쉼터 회원들은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일단 6개월 내 도와 시로부터 받았던 돈을 모두 상환할 계획이다. 또 이윤이 모이면 안양대 후배들을 위해 민들레장학금을 만들겠단다.

무엇보다도 쉼터를 전국적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키워나가는 게 그들의 최종 목표다. 신은미(21)씨는 "1g의 행동이 1톤의 생각보다 무거운 법이다. 남들은 어렵고 황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당당히 도전하겠다"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월급은 얼마씩 받기로 했느냐고 물었더니 "앗, 사업에 몰두하다 보니 그걸 안 정했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글·사진= 강주형 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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