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기 드라마 '공부의 신'의 원작은 일본 만화다. KBS에 앞서 일본 TBS가 2005년에 그 만화를 원작으로 해 '드래곤 사쿠라'란 드라마를 제작 방영했다. '드래곤 사쿠라'는 용산(龍山)고교를 배경으로 한다. 동경대학에 진학한 학생을 배웅할 장소를 벚꽃나무로 삼고, 나무를 심는 장면이 등장한다. 용산고교의 용(龍)과 벚꽃나무를 합성해 '드래곤 사쿠라'란 타이틀을 만들었다. 2005년 방영 당시 15%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만화를 원작으로 삼곤 있지만 KBS가 '공부의 신'을 방영하기까지 '드래곤 사쿠라'의 성공이 큰 몫을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 드라마로 공부하는 법을 배우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꼴찌라도 열심히 하면 정말 동경대학에 갈 수 있을지 내기를 걸 정도로 궁금증을 자극하며 인기몰이를 했던 모양이다. 그 정도 인기를 끌었으니 한국에서 리메이크해도 일정 시청률은 확보할 거라는 믿음을 KBS는 갖고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 문화현장에서 공통으로 갖는 근심은 수요의 불확실성이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뜨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있다. 불확실성 감소를 위해 제작을 행하는 쪽에서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한다. 그 중 하나가 이미 다른 시장에서 성공한 작품을 다시 만드는 일이다. KBS는 불확실 감소 전술 중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리메이크 전술을 택한 셈이다.
최근 KBS가 일본 시장에서 성공한 프로그램을 리메이크하는 일이 잦아졌다. 얼마 전 공전의 히트를 했던 '꽃보다 남자'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지만, 일본 드라마를 참조한 흔적도 많다. '결혼 못하는 남자'도 일본 후지TV의 프로그램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공부의 신'까지 포함하면 1년간 세 편의 일본 작품을 리메이크한 셈이다.
오랫동안 국내 방송계에서 리메이크 선수는 SBS였다. SBS는 국내외 만화시장에서 성공한 작품을 드라마로 만들기도 했고, 일본 버라이어티 쇼의 포맷을 채용하기도 했다. 상업방송이 누릴 수 있는 느슨한 사회적 눈초리를 십분 활용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큰 공 들이지 않고 이미 검증받은 작품을 채택하는 일은 상업방송으로선 영리한 선택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리메이크하는 일이 영리한 전술일 순 있지만 공공성을 따지게 될 경우 그 전술은 비판 대상이 된다. 공영 방송의 리메이크에는 합리적 전술로만 해석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우선 창작을 않는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창작을 않는다는 말은 유능한 작가를 양성하지 않으며, 창의적 제작자 키우기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과 통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창작 영역을 타 시장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케이블TV를 보면 창작 않는 대가가 무엇인지 확연히 알 수 있다. '공부의 신'을 방영하자 케이블에서 '드래곤 사쿠라'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꽃보다 남자' '결혼하지 못하는 남자'도 지상파 방송에서 시작하자마자 일본 원작을 방송했다. 케이블은 어떤 창작도 없이 국내 지상파에 편승, 기생하는 셈이다. 일본 방송에 한국 지상파가 편승, 기생하고 한국 지상파에 한국 케이블이 편승, 기생하는 '편승, 기생 전술'의 연쇄가 발생하고 있다.
KBS의 법적 지위는 국가기간방송이다. 으뜸이며 중심 방송이란 뜻이다. 혹자는 맏형 방송이라는 별칭을 붙여 그 지위를 설명한다. 한데, 일본 만화 원작과 일본 상업방송 원작에 기댄다니 맏형 구실과 거리가 멀지 않냐는 생각을 해본다. 리메이크는 기간방송의 얼굴을 간질이는 말처럼 들린다. 방송 생태계의 꼭대기에 있는 기간방송이 사쿠라처럼 자신만 활짝 피는 그런 일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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