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금강(金剛), 여름 봉래(蓬萊), 가을 풍악(楓嶽), 겨울 개골(皆骨). 금강산은 철마다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산의 자태나 풍경이 각기 달라 이렇게 불린다. 1998년 11월 18일, 분단 이후 긴 세월을 기다린 끝에 남쪽 관광객 882명이 크루즈 관광선을 타고 금강산에 첫발을 내디뎠다. 두려움과 설레는 마음을 함께 안고 찾은 금강산은 백색 봉우리와 짙푸른 바닷물, 그리고 검은 군함이 떠있는 낯설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관광객이나 이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북측 주민이나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낯설고 두려웠다.
관광객들보다 먼저 금강산에 들어간 이들이 있다. 장전항 앞바다 4만5,000평을 매립하여 부두를 만들고 방파제를 쌓았다. 관광버스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닦았고 발전소도 세웠다. 목재와 철강재를 등에 지고 산에 올라 관광코스를 보수하고 철제 계단과 다리도 놓았다. 차가운 해풍이 몰아치는 바닷가 컨테이너에서 잠자고 밥 짓고 빨래도 하면서 밤낮으로 관광객을 맞을 채비를 했다.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 금강산을 다녀간 관광객이 195만 명을 넘었다. 이제는 군사분계선 철책을 관광버스로 가로질러 곧장 육로로 금강산을 찾는다. 산과 바다는 변함없으나 장전항 앞바다에 떠있던 검은 군함은 사라지고, 대신 화사한 해상 호텔이 떠있다. 서로 두려워하던 남쪽 관광객과 북측 안내원이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된지도 오래다.
금강산 관광을 함께 준비했던 이들이 모처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그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부두와 방파제는 혼자 다 했다고 우기는 토목쟁이,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은 자신이 모두 보수해서 문을 열었다고 눙치는 건축쟁이, 북측 교예단 공연의 사회를 1,000회 이상 보았다는 자칭 명MC, 금강산을 수천 번 오르내렸다는 관광조장, 하루 수천 개씩 기념품을 팔았다며 뻥을 치는 판매직원. 한바탕 웃으며 잔을 부딪치는 그들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금강산 관광은 서로가 원해서 시작했던 사업이다. 지금도 다시 시작되기를 서로가 간절히 원하고 있다. 돈이 없어 금강산 시설을 팔아야만 했던 2001년, 태풍으로 관광노정이 파괴되었던 2002년, 정몽헌 회장이 돌아가신 2003년, 북측과의 마찰로 심한 몸살을 앓던 2005년, 핵실험으로 관광이 무더기로 취소됐던 2006년, 그리고 지금.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그 때마다 닫힌 마음의 문을 다시 열고, 분단 50년의 높은 벽을 조금씩 허문 곳이 바로 금강산이다.
기쁜 소식이 들려온다. 8일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이 열린다. 이번 회담이 금강산 관광재개와 남북관계 발전에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연초 남과 북은 국정연설과 공동사설에서 관계개선 의지를 다짐하고 확인했다. 서해의 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남북 실무회담이 열렸고, 3통 문제 협의를 위한 군사실무회담도 예정되어 있다.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대고 진실된 대화를 한다면 금강산관광 문제도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 방안이 분명히 나올 것으로 믿는다. 부디 이번 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 꽃피는 봄에는 금강산 삼일포에서 옛 친구들과 함께 회포를 나누며 기쁨의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
김고중 한국무역협회 남북교역투자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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