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평화화랑 입구에서 그는 큰 모자이크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의 미소에는 생전에 그가 만난 사람들이 들어 있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과 외국 원수들도 있고, 기업 총수도 있으며 세기의 스타 마이클 잭슨도 있다. 그러나 그 소년 같은 미소가 이런 힘 있고, 돈 있고, 인기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나온 것은 아니리라. 그보다는 모자이크와 실제 그의 마음에서 훨씬 많은 자리를 차지한 힘 없고, 이름 없는 이웃들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전시장에 걸린 121점의 사진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스스로 '바보'라고 했다. 사진은 그가 어떻게 바보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하느님이 성직자의 길만 보여준다고 스물 여덟의 나이에 사제가 됐으며, 어리석게도 "교회는 세상 속에,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며 담을 허물어 편안한'나'를 거부했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독재와 탐욕이 아니라 정의와 자유, 평화와 사랑, 나눔과 일치의 세상이었다. 그것을 위해 그는 독재의 칼날 앞에서"나를 밟고 지나가시오"라고 외쳤고 허리를 굽혀 낮은 곳, 외로운 곳, 아픈 곳, 그늘진 곳으로 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존재야말로 우리 시대의 큰 위안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바보'뒤에 '천사'라는 말을 붙여 주었다. 사진에는 성직자로서, 은퇴하고서는'혜화동 할아버지'를 자처한 그 바보천사의 고뇌, 결단, 웃음, 미소, 눈물, 기도, 연민, 겸손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렇게 김수환 추기경은 사진으로 다시 찾아와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서로 사랑하라고. 전시장 한 쪽 기둥에 써 놓은 이해인 수녀의 시는 그의 일생 자체가 세상과 인간을 향해 항상 깨어 있는'사랑의 인사'라고 말한다. 그의 인사는 천사가 된 뒤에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년(16일)을 맞아 곳곳에서 그를 기리는 시간이 마련된다. 울산에서도 사진전시회가 열리고, 서울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는 추기경이 남긴 유품들을 전시한다. 추모음악회도 준비했고, 추기경의 음성파형을 활용한 보이스 프린트아트도 선보인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추기경의 나눔 정신을 기리는 '바보의 나눔 재단'을 16일에 출범시킨다. 동화책도 나오고, TV들은 다큐멘터리와 특집들을 준비했다. 다 좋고,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자신의 일에 유난히 소박했던 추기경이 "웬 야단법석이야"할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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