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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시인의 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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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시인의 토시

입력
2010.02.0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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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제자들과 점심 먹는 모임에 나갔다가 뜻밖에 누비로 만든 토시를 선물 받았다. 나무를 심는 제자가 준 선물이었다. 토시란 추위를 막기 위해 팔뚝에 끼는 것으로 저고리 소매처럼 생겼다. 난생 처음 토시를 선물받았고, 그 덕분에 보기만 했던 토시를 처음 끼게 됐다.

토시에 대한 내 기억은 농부였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떠오른다. 두 분은 여름엔 농사용 토시, 겨울엔 방한용 토시를 자주 끼고 계셨다. 그렇다고 내가 선물받은 것처럼 당초무늬가 놓인 멋진 것은 아니었다. 늘 땀과 때에 절어 있던 가난한 삶의 토시였다. 할아버지 농사를 그만두고 도시로 나오시면서 그 토시들도 우리 집에서 사라졌다.

기록에 따르면 토시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외래 문명이 밀려들어오면서부터 서서히 밀려났다고 하니, 토시 선물에 사라진 전통문화를 만난 듯 반갑다.

토시를 자세히 살펴보니 앞이 좁고 뒤가 넓게 만들어져 있다. 두 팔에 조심스레 끼워본다. 이내 팔이 뜨듯해진다. 제자가 말했다. 두 팔을 찬바람에 내놓는 나무농사를 오래 짓다보니 토시가 참 유용한 전통 의상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겨울밤 늦도록 책을 읽거나 시를 쓸 때 토시를 끼고 있으면 춥지 않을 거라고.

나는 토시를 끼고 앉은뱅이책상에 앉았다. 마치 1930~40년대 시인이 된 듯 묘한 기분이다. 토시 때문에 이 겨울이 가는 것이 아쉬울지 모르겠다.

시인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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