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 담합행위를 이유로 소주업계에 27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업체들이 물가안정 시책에 부응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규모를 당초 실무자들이 제시한 금액(2,263억원)의 10분의1 수준으로 대폭 줄여, 과징금 산정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공정위는 4일 전원회의를 열어 두 차례나 출고가격 인상을 담합하고 판촉활동 기준 등을 부당 합의한 11개 소주업체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27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업체별로는 진로의 과징금이 166억원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무학(26억원), 대선주조(23억원), 보해양조(18억원), 금복주(14억원), 선양(10억원) 등의 순이었다. 또 충북소주(4억원), 한라산(3억 5,000만원), 하이트주조(2억원), 롯데주류(1억7,000만원) 등도 억대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으며, 두산은 3,800만원으로 가장 적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2007년 5월과 2008년 12월 출고가격 인상을 앞두고 업계 사장단 친목 모임인 '천우회'를 통해 인상 여부와 시기 및 인상률을 사전 합의했으며, 실제로도 이를 시행했다.
가격 담합은 시장점유율 1위인 진로가 앞장 서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 10개 회사가 이를 따르는 식이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진로가 국세청 행정지도를 받아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 10개 업체가 그 인상률에 맞춰 가격을 올리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또 업체들이 천우회를 통해 ▦지역행사 지원 자제 ▦경품 한도 설정 ▦병마개 제조사의 가격 인상 요청에 공동 대응 등 마케팅 활동에 대해서도 합의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국세청 행정지도에 따라 가격을 올린 것으로, 담합이 아니다'라는 업계 주장에 대해, "행정기관 지도를 빌미로 사전 혹은 사후에 가격 인상에 대해 별도 합의한 행위는 명백한 담합"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과징금이 당초 예상의 10분의1 수준에 머문 것을 놓고, 공정위가 카르텔 감시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정위 조사관들이 심사보고서를 통해 제시한 2,263억원 과징금을 90%나 줄여준 것은 행정의 신뢰성을 저해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공정위도 "범 정부적인 물가안정 대책에 부응해 인상폭을 조정하려고 노력한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할 뿐, 대폭 삭감의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공정위가 정부가 내세우는 물가 안정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소주업계는 "담합 자체를 한 적이 없는데 무슨 과징금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가장 많은 과징금을 부과받은 진로는 공정위 발표 직후 내놓은 해명자료에서 "결정에 승복할 수 없으며, 내부 검토 후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종진 한국주류산업협회 상무도 "행정지도를 통한 가격 결정을 담합으로 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과징금이 적은 롯데주류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공정위 결정을 수용하고 과징금을 낼 계획"이라며 승복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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