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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겨울/ 미야기자오의 '수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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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겨울/ 미야기자오의 '수빙'

입력
2010.02.0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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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호쿠의 신비 '스노 몬스터' 그 탄생의 고통을 맛보다

호텔에서 나오자 5분이 지나지 않아 산길이다. 굵은 체인을 감싼 버스가 차가운 보슬비를 뚫고 산을 오른다. 창을 적시던 비는 어느새 눈으로 변해있다. 산 중턱엔 산 아래를 적시던 비의 흔적은 없다. 오를수록 눈과 숲은 깊어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제설차가 지나간 도로가엔 2m 높이로 쌓인 눈이 만년설 절벽인 듯 층층이다.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높은 산맥은 눈과 구름과 하늘로 잇닿아 경계를 잊고 있다.

30여분을 달려 고도 1,500m 위치에 있는 미야기자오 스미카와 스노파크 산장 앞에 내렸다. 몇몇 사람들이 스노보드와 스키를 타고 낮은 경사면을 내려오고 있다. 더 볼게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뒤로 하고 예약해 둔 장화를 갈아 신는다. 초록색 페인트를 입힌 설상차가 거친 숨을 토하며 출발한다. 2차선 도로보다 조금 넓다. 자연을 최대한 살린 13개의 슬로프가 산 전체에 미로처럼 얽혀 있다. 안전망 없는 슬로프 옆은 숲 아니면 깎아지른 내리막이다.

37도 경사면의 최상급자 코스는 초보 스노보더에겐 절망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최상급 클래스의 스키어라도 가이드 없이는 탈 수 없다는 말에 약간의 위안을 받는다. 정해진 코스가 없다는 것은 잘못 들어서면 위험 하다는 것이리라. 그래도 산길을 내달리다 잠시 쉬고 있는 스키어들은 흩날리는 눈보다 더 자유로워 보인다. 옆을 지날 때 함께 손을 흔들었건만 뒤돌아보니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수빙(樹氷), 스노몬스터(Snow Monster)라고도 불린다. 시베리아 계절풍이 동해에서 수분을 공급 받아 내려오면, 동으로 뻗어있는 야마가타 연봉이 이를 막아 불순물 많은 무거운 눈을 걷어낸다. 그리고 구름 상층의 깨끗한 눈만 강한 서풍을 타고 자오산을 찾아와 아오모리 전나무를 휘감는다. 2개월에 걸쳐 만들어지는 산 전체의 수빙 군락은 한파가 지난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파란 하늘 아래 그 장엄한 모습을 허락한다.

장갑차만큼 견고한 설상차 안에서의 덜컹거리는 30분은 12명의 체온과 히터의 따스함으로 평온하다.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바깥의 눈보라는 그저 창밖의 풍경일 뿐. 하지만 고도 1,700m를 지나자 바람에 눌린 작은 나무들이 한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고 쌓인 눈을 이기지 못한 전나무 가지들은 땅을 향해 잔뜩 몸을 접었다. 함박눈을 거칠게 내려놓은 세찬 바람이 은빛 눈가루를 싣고 다시 하늘로 오른다. 마치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푯말인 듯 거대한 존재감이 창을 스친다.

고도 1,800m에 이르러서야 설상차는 브레이크를 밟는다. 뒷문이 열리자 거센 눈보라가 차 안으로 몰아친다. 생각보다 강한 갑작스런 눈바람에 숨까지 턱 막힌다. 눈밭에 발을 디디자 그야말로 새하얀 행성에 내린 우주인이다. 10원짜리 동전만한 눈보라가 사정없이 얼굴로 몰아친다. 설상차 앞쪽에 몸을 숨기고 정신을 차린다. 그때서야 무얼 만나러 여기에 왔는지 실감한다. '스노몬스터'다.

거친 눈보라에 몸을 맡긴 거대한 아오모리 전나무가 칼날처럼 차가운 눈갑옷을 입고 있는 중이다. 서풍을 타고 정면으로 몰려드는 커다란 눈송이. 질척이는 질감이다. 귀 속으로, 옷 사이로, 달라붙는 거친 느낌이 흡사 묽은 진흙과 같다. 잠깐 서 있었지만 눈사람이 된 듯하다. 시계(視界)는 10m를 넘지 못한다. 산 밑에서 불어오는 눈보라를 거슬러 길 가까이 서있는 전나무에 다가갔다. 아니 나무라기보다는 이미 거대한 눈덩이다. 그 차가운 아름다움을 감탄하고 서 있기엔 자연의 거부감이 너무 거세다. 차에서 내린 지 10여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설상차에 올라 하산을 시작했다.

"저렇게 차가운 눈 속에 갇혀도 아오모리 전나무는 살 수 있는 건가요?"라고 묻자 20대 초반의 설상차 가이드 하시모토씨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무는 죽지 않습니다. 그 신비를 밝히기 위한 과학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 넘어온 고개를 아마노가와 고개라고 하는데요. 고개를 넘을 때마다 수명이 연장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매일 고개를 넘는 저는 몇 살까지 장수할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한국 가수 보아의 열성 팬이라며 그는 노래까지 한 곡 불러 보였다.

■ 온천에 몸담그고 설산과 함께 눈 맞으니…

일본 동북쪽에 위치한 후쿠시마현은 아이즈, 나카도오리, 하마도오리 등 세 지역으로 나뉜다. 그 중 서쪽 내륙에 위치한 아이즈 지역은 눈이 많은 곳으로 노천온천으로 유명하다. 아시노마키 온천의 오카와소 료칸(旅館)을 찾았다.

전통과 현대식 건축 양식을 혼합한 건물 안, 복층으로 이루어진 홀의 위쪽에 놓인 다이묘(大名) 인형과 환하게 인사하는 기모노를 입은 여급들이 일본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낸다. 또한 쇠고기 전골, 생선회, 구이, 조림 등 신선한 재료로 차려진 카이세키(료칸에서 석식으로 제공되는 일본의 전통식)요리와 사케 한 잔은 이국의 정취를 뱃속까지 전해준다.

전통 다다미방으로 꾸며진 객실은 삼인 가족이 머물기에도 충분할 만큼 넓고 깨끗하다. 준비된 유카타(浴衣)로 갈아입고 수건을 들고 노천온천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남탕과 여탕이 구분되어 있다. 각각 2개의 노천온천을 갖추고 있다. 늦은 저녁시간이라서인지 대욕장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노천온천으로 내려가자 차가운 겨울 공기에 가벼운 몸서리가 쳐진다. 료칸 건물과 커다란 바위 사이에 통나무로 기둥을 심고 지붕을 얹었다. 세 개의 탕이 층으로 구성된 형식이 독특하다. 가장 위의 탕에서부터 하늘이 열려있는 세 번째 탕까지 몸을 적시며 내려가니 조명이 비춰진 계곡 아래로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데워진 몸을 물 밖으로 빼내 식히기를 서너 번 했을 때 이마 위에 차가운 눈이 내려앉았다.

아시노마키의 온천은 칼슘과 나트륨 성분이 풍부한 무색투명한 물로서 피로회복은 물론 류머티즘, 피부질환, 냉증, 신경통, 근육통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한 병이 없는 젊은이라면 하루의 피로가 깨끗이 풀리는 경험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온천의 효과일까? 아침 6시에 눈이 떠졌다. 창밖을 보자 밤새 내린 눈이 계곡을 하얗게 덮었다. 그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계곡은 절경이다. 살면서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몇 개 남는다면 그 중 하나에 분명 이 모습이 담기리라. 녹색과 흰색만으로 그려진 가파른 산 아래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흐른다. 후쿠시마의 아시노마키에서 감히 노천온천의 진수를 맛보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 여행수첩

-미야기자오 스미카와 스노우파크까지는 센다이공항에서 차로 1시간 거리다. 대중교통 이용 시 JR센다이역에서 신칸센 Max야마비코를 이용해 시라이시자오에서 하차한 후, 노선버스를 타고 토갓타온천으로 간다. 숙박호텔에 따라 센다이역에서 무료 셔틀버스 제공. 스미카와 스노우파크까지는 대중교통편은 마련되지 않으므로 렌터카 또는 호텔 송영버스를 통해 이동.

-아시노마키 온천까지 대중교통 이용은 약간 복잡하다. 후쿠시마공항에서 공항리무진버스로 JR고오리야마역까지, 반에츠니시선으로 JR아이즈와카마츠역으로, 아이즈철도로 환승 아시노마키온천역에서 하차 후 호텔 송영 차량 탑승.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ookawaso.co.jp) 참조.

-미야기현에는 일본 3경의 하나인 마츠시마가 있다. 크루즈에 올라 가키나베(굴요리)를 즐기며 270여개의 크고 작은 섬 위로 지는 저녁노을을 감상해 보시길. JR센다이역에서 센세키선(仙石線) 혼시오가마역(굴요리 코스) 또는 마쯔시마역 하차.

-후쿠시마는 지역별로 기온차가 심해 아이즈 지역에서 스키를 탔다면 동쪽 해안 지역 하마도오리에서는 같은 날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도심 지역인 나카도오리는 쇼핑하기에 좋다.

-후쿠시마에서 손꼽히는 아르츠 반다이 스키장을 찾는다면 이나와시로 호수의 물보라얼음 트래킹을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영하의 기온이라면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내는 얼음궁전을 구경할 수 있다.

-센다이 및 미야기현에 대한 관광안내는 미야기현 서울사무소(www.miyagi.or.kr 02-725-3978)에서, 후쿠시마현 관광정보는 한글 공식홈페이지인(http://fukushima.japanpr.com 02-737-1122)에서 볼 수 있다.

미야기자오(일본)=글ㆍ사진 김승균 기자 lib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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