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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내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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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내시경

입력
2010.02.0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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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쪽에서 저 쪽을 본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은 보는 것이야말로 믿을 만하다는 의미와 함께 인간의 욕망 가운데 보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강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너무 멀어서 도달하기 불가능한 곳을 보고 싶어 망원경을 발명했다. 너무 작아서 더 이상 관찰할 수 없는 대상을 보고 싶어 현미경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장애물 때문에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르다. 뻔한 얘기지만 빛이란 놈이 직진하는 성질이어서 그렇다. 방향을 꺾어 요리조리 돌려볼 수 있는 방편이라곤 거울과 같은 반사경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잠망경이란 게 생겼고 잠수함과 함께 고안됐다. 잠수함의 원조는 BC330년 아리스토텔레스가 큼직한 종(鐘) 모양의 배를 물 속에 넣고 그 안에 들어가 바다 속을 엿본 것이었다. 근대적 의미의 잠수함은 17세기부터 실험용으로 개발되다가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전쟁 때 등장했으나, 그나마 물 속에 숨어 다니다가 결정적 순간엔 승조원이 탈출하는 일종의 '유인 어뢰'나 '조종하는 시한폭탄' 수준이었다. 잠망경을 달고 물 속에서 물 밖을 자유롭게 관찰하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였다. 이러한 잠망경을 응용하여 내시경이 만들어졌다.

▦입이나 코 귀의 속을 관찰하던 내시경이 이제는 오장육부 어디나 쉽게 도달하는 의료용으로 발전했다. X레이 투시기가 1차원 직선관찰만이 가능한데 비해 이 놈은 해양을 누비는 첨단 잠망경처럼 요소요소 곳곳을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다. 빛의 직진과 반사 성질을 융합한 굴절형 대롱이 개발되면서 위치와 경로에 제한을 받지 않는 첨단 잠망경이 된 셈이다. 산업용의 경우 테러범이 장악한 공간도 지름 1㎝ 정도의 틈만 있으면 이 쪽에서 저 쪽의 상황을 훤히 볼 수 있다. 수도관이나 천장, 복잡한 기계나 포장한 컨테이너의 속을 살피는 것은 일도 아니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내시경 검사'를 받고 있다. 1968년 4월 27일(28일이 탄신일) 세워진 이 청동 동상은 속이 비어 있고 주물 몇 개를 붙여 만든 것인데, 해당 자문회의 등이 보수가 필요하다고 경고한 데 따른 것이다. 동상의 겨드랑이나 갑옷의 틈새 등을 통해 (산업용)내시경을 삽입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한 두 곳에 손톱만한 구멍만 뚫었다 막으면 된다. 42년 동안 가끔 샤워(물청소)만 시켜주고 '건강진단'을 한 번도 안 했다니 의외다. 보이는 곳을 잘 유지하려면 '볼 수 없는 곳'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함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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