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매출액기준 세계 10위권내 백화점 7개를 보유한 '백화점 왕국'이다.
하지만 장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들은 백화점을 외면하고 '보다 싼 매장'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일본의 명동으로 여겨지는 도쿄 긴자거리에 입점한 세이부백화점 유락초점이 연내 문을 닫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백화점은 지난 해 매출액 21조5,484억원으로, 전년대비 10.5%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일본 백화점을 벤치마킹해 왔던 한국 백화점이 뛰어난 경영 실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계속된 지난해 흔들림 없이 고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경영 환경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형 백화점의 DNA'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지난달 중순 시장 조사차 스위스와 프랑스, 영국을 방문한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팀의 시계CMD(선임상품기획자) 박상옥 과장은 약 9억원 상당의 '예거르쿨트르', '바쉐론 콘스탄틴' 등 유명 브랜드 시계 40여점을 샀다.
소공동 에비뉴엘에서 판매하기 위해서다. 3년 전만해도 상품본부 MD(상품기획자ㆍ바이어)의 해외 출장을 식품팀의 일본 백화점 조사 정도로 제한을 뒀던 롯데백화점은 최근 식품은 물론, 의류, 잡화, 명품 등 전 상품본부로 범위를 넓혀 MD와 CMD에게 해외 출장을 권장하고 있다. 지역도 일본을 넘어 북미, 유럽 등지로 확대됐다.
다양한 종류를 표현할 때 흔히 '백화점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하지만 이제 적어도 한국 백화점의 경우라면 '백화점식'의 의미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겠다.
MD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는 주요 백화점들이 직접 상품을 개발하는 등 매장과 상품 차별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까닭이다.
편집매장으로 승부수를
업체간 동질화가 가속화하면서 최근 MD가 발굴한 상품과 아이디어로 꾸민 새로운 형태의 편집매장으로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백화점이 늘고 있다.
바이어가 해외에서 직소싱한 상품으로 구성한 편집매장은 직접 패션 트렌드를 제안하고 차별화된 상품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백화점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 중이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8월 20~30대 젊은 남성을 겨냥해 만든 '라비앳(Laviat)'은 남성 캐주얼 편집매장이다. 상품본부 MD가 유럽을 방문해 소싱한 이탈리아 밀라노와 피렌체 등지의 국내 미도입 유명 브랜드들로 꾸몄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랜드 '앤드류 맥켄지(Andrew Mackenzie)'를 국내 단독으로 전개하는 이 매장은 월평균 20% 대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라비앳' 외에도 지난해 9월 본점 오픈을 시작으로 강남점, 영등포점 등에서 운영 중인 캐시미어니트 전문숍 '보틴(Bottin) 캐시미어', 수입 아웃도어를 모은 '몬타나 스튜디오' 등이 이 백화점의 대표적인 편집매장이다.
현대백화점이 지난해 2월 압구정본점에 오픈한 '스타일429'는 '트렌드 수용과 자기 표현력이 강한 20∼30대 전문직 여성과 주부'를 위한 편집매장이다.
2007년말 '선진 MD팀'을 만든 신세계백화점은 편집매장을 매년 30% 가량씩 늘리고 있다. 명품 구두 편집매장인 '슈컬렉션'의 경우 마놀로 블라닉 등 다른 백화점에는 없는 브랜드를 소싱하면서 이 백화점 차별화의 핵심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온리 원' 브랜드가 살 길이다
편집매장 증가로, 각 백화점이 단독 전개 브랜드를 늘리고 있는 것도 한국형 백화점의 성공 요소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3월 편집매장 형식으로 첫 선을 보인 기본 니트 제품 '니트앤노트'는 중간 유통단계 없이 생산자와 판매자를 직접 연결해 가격 경쟁력을 가지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협력사와 공동으로 기획ㆍ제작한 신세계의 독자 브랜드 '신세계 퀄리티(S-Quality)'도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상품 선택의 폭을 넓히고 다른 백화점에 없는 단독 상품으로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신세계 퀄리티는 여성복과 남성복, 구두 등 잡화와 스포츠, 생활용품군에서 다양한 제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예컨대 구두업체 바이네르와 함께 2007년 기획ㆍ출시한 2.5mm 단위의 구두는 매년 15% 가량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는 제품이다. 240, 245, 250처럼 5㎜ 단위씩 늘어나는 기존 구두 사이즈에 2,5㎜ 단위를 추가함으로써 개별 발 사이즈에 더 잘 맞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한 것이다.
MD, 브랜드 관리자서 상품 기획자로
이처럼 트렌드에 맞는 상품을 직접 기획ㆍ제조ㆍ판매하는 일이 고객유입효과로 직접 연결되면서 백화점의 바이어 업무는 '브랜드 관리형'에서 '상품 기획형'으로 바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어가 직접 발로 뛰어 소싱한 제품은 해당 백화점의 콘셉트와 특징을 담고 있어 중요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중국에 점포를 내면서 현지 여성의 선호 브랜드 조사를 위해 길거리에 나가 5,0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는 한 해외 백화점 바이어의 경험담이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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