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고 있는 왜곡된 현실은 반드시 바로 잡혀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에는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교육이 낡은 패러다임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기존 패러다임 안에서 교사들이 수업을 더 잘하고 학생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수업과 공부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 한층 중요하다.
학교 수업에서 가장 저차원적인 수업은 국어수업이다. 학생들의 공부하는 방식이 가장 저차원적인 것도 국어과목이다. 그러나 국어는 낡은 패러다임에서 가장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과목이다. 또 벗어나야만 한다. 우리 교육의 병폐를 치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풍부한 독서, 활발한 토론, 일상적인 글쓰기를 가장 쉽게 도입할 수 있고 또 도입해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국어교육은 1980년대의 학력고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불과 한두 권의 교재를 1년 동안 분석하거나 객관식 문제풀이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을 대학입시에서 찾는다. 물론 대학입시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만 봐도 그것은 분명하다. 언어영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출제 되는 거의 모든 글이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와 문제집 밖에서 출제된다는 것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유명 문학작품 일부를 제외하면 언어영역 시험에서 학생들이 접하게 되는 글은 대부분 학생들이 태어나 처음 읽게 되는 글이다. 이러한 시험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능력은 처음 보는 글을 가급적 빠른 시간에 이해하는 독해능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독해능력을 기르는 사실상의 유일한 방법은 독서이다. 그것도 가급적 많은 글을 읽는 다독이다.
물론 문제풀이 공부도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풀이 공부는 어느 정도 하면 더 이상 올라갈 경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풀이 방법이란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문제풀이 공부의 한계효용은 매우 급속하게 체감하여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제로가 된다.
앞에선 수능시험을 예로 들었기에 독서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학별 논술시험과 면접을 생각하면 독서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이 시험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된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꾸준한 글쓰기와 체계적인 말하기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러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객관식 문제풀이만 넘쳐나고 글쓰기 공부는 전무하다. 토론 수업 등을 통한 말하기 교육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능력이 너무나 형편없다.
글쓰기와 말하기 능력은 단순히 논술시험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치 있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객관식 문제풀이 능력은 수능시험이 끝나는 날 이후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글쓰기와 말하기 능력은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지는 능력이다. 사회적 역할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중요해지는 능력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가진 그의 가장 뛰어난 능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뛰어난 글쓰기 능력과 말하기 능력이 아닌가?
대학입시에서의 승리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더 나아가 사회에서의 더 큰 성공을 꿈꾸는 학생이라면 국어공부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기정 서울 창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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