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등 선진국이 강력한 금융 규제를 추진하면서 우리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려 했던 금융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규제 완화를 통한 성장'에 방점을 찍었던 정부의 금융선진화 방안이 암초를 만난 셈이다. 일단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가 어제 개최한 '위기 이후 한국 금융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미래비전' 국제세미나에서는 미국의 금융규제 방안을 국내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상업은행과 투자은행(IB)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위험도가 높은 투기적 투자를 규제하겠다며 '월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탐욕스런 금융자본이 최악의 경제위기를 일으킨 주범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상황은 크게 다르다. 상업은행과 IB 업무가 비교적 엄격히 분리돼 있고 은행에 대한 규제도 강한 편이다. 특히 IB 업무는 걸음마 수준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인수ㆍ합병(M&A)이나 주관사 업무는 대부분 외국계 차지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국제적 논의를 그대로 적용해 금융 규제를 강화하면 금융 자율화 정도를 초등학생 수준으로 되돌리는 잘못을 범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각에선 선진국의 금융규제 시스템 개편을 낙후된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기회로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일리는 있지만 국제 시장의 변화를 무시할 만큼 상황이 녹록하진 않다. 이미 미국 투자은행들의 신흥시장 자금회수 가능성이 제기되며 환율과 주가가 요동치는 등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산업은행의 태국 은행 인수 좌절에서 보듯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G20 의장국으로서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조치 마련에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미나에서 "글로벌 금융환경 변화를 고려해 금융산업의 건전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국제적 논의에서 비켜나기 힘든 처지를 반영한다.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규제'와 '성장'의 적절한 균형 속에서 한국 금융의 중ㆍ장기 발전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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