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영국과 우리는 다르다. 선진국들이 금융규제를 조이더라도 아직 우리는 좀 더 풀어야 한다."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가 3일 공동 주최한 '위기 이후 한국 금융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미래비전' 세미나에서 정부는 최근 국제적인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국내 실정에는 규제 강화보다 완화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G20 등을 중심으로 논의중인 국제적인 금융규제 움직임에 적극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아직 국내 금융산업의 규모와 수준이 걸음마 단계인 만큼 규제보다는 육성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고, 금융기관의 대형화를 막겠다는 취지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발표한 은행개혁안, 즉'볼커 룰'도 국내 실정에는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개회사에서 "미국 영국 등 금융선진국은 대학생 수준으로 허용됐던 금융자율의 정도를 고등학생에 허용되는 수준으로 줄이고 규제를 강화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초등학생 수준의 자율만 허용돼 왔다"면서 "사후 감독과 모니터링은 국제수준으로 강화해야 하되, 사전 규제나 영업행위 규제를 외국과 같이 일률적으로 강화할 경우 우리 금융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동수 위원장도 기조연설을 통해 "비록'볼커 룰'이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으나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면서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가 철저하고 은행에 대한 규제도 매우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외환부문 취약성 같은 구조적 문제는 개선하되 금융산업의 육성노력도 지속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한국 금융에 대한 중장기 비전과 정책과제도 이런 방향에 초점을 맞춰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글로벌 금융환경 변화를 감안해 금융규제 및 감독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우리 금융산업의 건전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도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장영 금융감독원 부원장도 패널 토론에서 "최근 국제적 규제강화 논의는 금융산업이 고도화되고 규제완화가 상당히 진행된 선진국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면서 "우리나라가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상당히 곤란한 면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금융규제는 시스템 리스크를 강화하는 문제는 국제기준을 참고해서 강화할 필요가 있으나, 자율과 창의를 억제하는 규제는 지속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토론에 참석한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국내 금융기관들이 인수ㆍ합병(M&A)을 통해 해외 진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은 최근 금융당국의 펀드 보수 인하 정책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보수와 수수료를 천편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라며 "투자자들에게는 당장 보수 인하보다 질 높은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볼커 룰(Volcker Rule)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달 발표한 은행 규제 방안. 이 계획을 구상한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 위원장의 성을 따서 '볼커 룰'이라 불린다.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상업은행(CB)과 투자은행(IB)을 사실상 분리하고 대형은행 간 합병을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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